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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l 31. 2019

오래된 것에 스며든 추억을 발견하다

일상의 흔적 73

7월 28일, 이젠 너무 뜨거워진 햇빛. 추억이 담긴 흑백사진을 찾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느꼈다. '오늘은 이 세상 여름 날씨가 아니니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뜨거워진 길에 발을 내딛고 나면 슬라임처럼 녹아내리겠지.' 살려면 집에서 할 일을 찾아야겠다. 청소는 어제 해뒀고 책은 별로, TV도 싫고 라디오는 좋아하는 DJ 시간이 아니고. 이런, 눈에 띄는 대로 해보려 해도 내키지 않는다. 이럴 땐 그동안 미루고 미룬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을 꺼낼 때다. 오늘 하루 마음먹고 정리정돈을 해야겠다.


난 정리정돈에는 재능도 의지도 없다. 기본적으로 눈에 한 번에 보이게 늘어놓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정리라고 하면 서랍 안에 몽땅 넣고 정돈이라고 하면 다시 꺼내서 먼지만 털고 블록을 쌓듯 반듯하게 집어넣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러니 완전한 정리정돈을 하려면 하루 마음먹고 스스로에게 줄 보상까지 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일단 첫 번째, 서랍을 열고 모든 물건을 꺼낸다. 적당히 성질별로 묶어 분류하고 필요한 것만을 골라내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린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슬쩍 추억을 끼워 넣어 예쁜 쓰레기를 다시 넣는 행위다. 정리정돈을 할 때면 왜 이렇게 감성이 돋고 기억력이 좋아질까, 진짜 추억이 아까운 건지 쓰레기가 늘어나는 게 귀찮아서 부리는 꼼수인지 스스로도 구별이 안된다.


하지만 열심히 바닥까지 꺼내다 보면 아주 가끔 예상하지 못한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 발견한 보물은 필름과 현상된 흑백사진이다. 대학시절 들었던 사진 수업에서 필름 카메라 다루는 법을 배웠다. 제일 중요한 준비물인 필름 카메라는 아빠에게 물려받은 걸 사용했다. 아빠가 직장인이 되고 번 돈을 조금씩 모아 마련한 카메라였다.


그 당시 굉장히 비쌌던 카메라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길 즐기고 풍경을 좋아했던 아빠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줬다. 아빠의 청춘을 담았던 카메라가 오랜 시간을 넘어 나에게 돌아왔다. DSLR과 다르게 차갑고 묵직한 무게가 마음에 들었다. 필름을 감는 소리, 한 장 한 장 숨까지 멈추고 공들여 찍는 순간, 피사체와 더 가까워지는 듯한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빠졌다.


그땐 참 많이도 찍었다. 내 손으로 찍은 사진을 내가 원하는 크기로 조절하고 현상하는 암실 작업이 재밌었다. 필름을 꺼내 현상하는 순간까지 결과물을 모르기에 두근거리고 설레는 감정이 좋았다. 수십 통의 필름을 썼고 수십 장의 흑백사진을 뽑아냈지만 부모님을 찍어준 사진은 단 한 장이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과거의 나에게 왜 더 많이 찍지 않았냐며 후회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단 한 장의 사진이 이사할 때 어떻게 섞여 따라왔는지 서랍 맨바닥에 있다. 지금보다 한참은 젊고 생생한 모습이다. 흑백사진이 주는 느낌 탓에 아련하고 아득하다. 한참 사진을 멍하니 봤다. 자신이 젊을 때 쓰던 카메라를 물려주며, 카메라에 묻은 자신의 추억을 털어내며 웃던 아빠의 얼굴에 떠오른다. 그때도 아빤 나만큼 즐겁고 행복한 20대를 보냈을까. 사진 속 웃고 있는 아빠에게 말을 건다.



(사진은 최대한 기억 속 필름 카메라와 비슷하게 생긴 카메라를 찾은 결과다. 물론 내 것은 30여 년의 세월을 품어 더 낡고 오래된, 렌즈마저 옛날의 것 그대로의 느낌을 팍팍 풍기는, 마치 세련된 할아버지 그 자체의 느낌이 난다. 휴가 때 집에 내려가면 제일 먼저 카메라부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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