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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ug 30. 2019

내 선택이 내 인생을 망치는 거라고?

일상의 흔적 81

8월 28일, 여전히 내리는 비, 습한 공기. 어떤 결정을 내리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고민이 많은 날들이었다. 딱히 이런 무거운 고민을 이 구질 거리는 날씨에 구질 거리는 얼굴로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내심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싶었나 보다. 무슨 일 있냐며 툭 터놓고 얘기하라는 친구의 말에 눌러 담았던 속내가 터져 나왔다. 서러웠고 불안했고 혼란스러웠고 때론 화도 났고 다시 삭혔던 나날들이 모두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실 최근 가장 나를 괴롭히는 문제는 부산에서 이직을 할 것인가,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서 살 것인가다. 내 터전을 고향으로 옮기고 엄마와 남은 시간을 보낼 것인가. 그동안은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엄마도 다시 내려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내 삶과 앞으로의 기회와 수많은 지인들을 모두 뒤로하고 이젠 친구도 거의 없는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매일매일 엄마에게 온기를 나눠주던 강아지도 떠났고 아빠도 떠났다. 엄마가 지켜야 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게다가 제주도엔 엄마의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다. 엄만 날이 갈수록 외로워하고 공허해했다. 친하고 좋은 이모들이 정말 자주 집을 찾아오고 저녁을 먹곤 하지만 뻥 뚫린 가슴을 메워줄 순 없었다.


게다가 이젠 엄마도 나이가 많았다. 고생이 많았던 젊은 날이 지나고 남은 것은 아픈 몸이었다. 건강하고 씩씩하고 때론 억척스럽던 엄마는 눈에 띄게 연약해지고 작아졌다. 엄마가 몇 번 크게 아픈 뒤로는 걱정이 많아졌다. 엄마 입에서 병원이라는 말만 나와도 심장이 쿵쾅거렸고 같이 가줄 수도 없는 내 상황을 탓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엄마와 살았던 날보다 혼자 살았던 날이 더 길어지고 있다. 내 살림에 점점 익숙해지고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익숙해지고 작은 원룸에 발을 넣어야 진짜 내 집이라는 생각에 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답답했던 제주로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런저런 내 긴 얘기를 듣던 친구는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내려가면 네 인생은? 어머니 혼자 계시고 걱정되고 그런 건 알겠는데 제주도 내려가서 뭐해? 지금 직장 같은 곳을 구하기도 어렵고 친구도 거의 없고, 솔직히 문화생활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고. 너 이제 곧 30살이야, 한창 커리어 쌓을 땐데 솔직히 어머니를 위해 내려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원하는 분야 쪽으로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또 일을 찾겠지. 엄마를 위해서도 있지만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친구야 여행하듯 놀러 와도 되고 제주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도 되고, 물론 나도 그런 여러 문제 때문에 고민이긴 해."


친구는 조금 답답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근데 결국 어머니 때문이잖아, 솔직히 네가 있다고 모든 외로움이 해결되겠어? 그렇다고 갑자기 뭐 아픈 데가 없어지겠어? 굳이 돌아가는 게 이해가 안 돼. 이번에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힘들 거야. 네 인생은? 어머니를 위해서 뭐 망쳐도 돼?"


머리를 크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 선택이, 엄마가 마치 내 발목을 잡는 장애물인 것처럼 얘기하는 친구의 말이 아프게 꽂혔다. 좋아하고 의지했던 믿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말은 그 누구보다 아프고 날카로웠다. 솔직히 나도 내려가서 혹시 내 커리어가 끊길까 봐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엄마가 선물해준 삶이다. 엄마가 낳아주지 않았다면 세상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온 마음으로 키워주지 않았다면 꿈이란 것을 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엄만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응원해줬고 걸어가는 길이 평탄하길 빌어줬다. 이젠 내가 엄마의 곁을 지키고 엄마에게 받은 삶의 아주 일부분을 엄마와 함께 보내겠다는데 이게 내 인생을 망치는 거라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너 같이 살고 있을 때 잘해드려! 부모님이 소중하지? 감사하지? 나도 그런 마음이야. 엄마가 아플 때 옆에서 손잡아주고 싶고 혹이란 말을 듣고 추가 검사를 할 때 그저 서 있는 거라도 같이 있고 싶고 그런 마음이야. 엄마가 아팠던 걸 나만 모르는 기분을 알아? 너 정말 말을 아프게도 한다. 오늘 내가 괜한 얘기를 했다."


울컥하는 마음에 소리치고 자리를 피했다. 부모님과 한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친구가 하는 말이라 더 야속했다. 하지만 차갑게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보니 친구의 말이 진짜 나쁜 뜻이나 악의가 담기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내가 내려가는 게 아쉬워서,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데 혹시나 적성에도 안 맞는 일을 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을 아닐까 싶다.(그런 마음이길 바라고 믿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서운한 마음이 남는다.

그저 어떤 선택이든 응원한다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건데...

오늘 밤도 어쩐지 어둡고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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