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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Sep 04. 2019

언젠간 내가 엄마의 그늘이 될 테니

일상의 흔적 82

9월 2일, 우중충 가을장마. 외롭다는 한마디가 무겁다.

주말부터 시작된 비가 폭우가 되어 내렸다. 온 세상을 어두컴컴하고 음침하게 만드는 비 때문에 기분도 내려앉는 월요일이다. 퇴근쯤에는 그치려나 했던 희망도 비에 쓸려 흘러갔다. 꾸준히 내리는 비는 가을장마라는 이름을 달고 이번 주 내내 올 예정이라고 한다. 토독토독 빗소리를 친구 삼아 걷던 중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어봤다며 속상했겠다는 말을 건넸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친구라 누구보다 내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친구 역시 대학생활부터 타지에서 살아왔고 부모님에 대한 걱정 역시 누구보다 크다. 하지만 나와는 반대로 꼭 서울에서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작은 미안함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송아, 고민이 많이 되겠다.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면서도 꿋꿋했던 너였는데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삶을 뒤로하고 새로 꾸린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나도 상상이 안가. 하지만 부산에 남아 다시 삶을 이어가든 제주도로 내려가 또 다른 삶을 살든 오로지 너의 의지만이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소중한 사람들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 거라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


토독토독 빗소리 사이로 친구의 따뜻한 응원이 들려왔다. 울컥하는 감정을 우산으로 가리고는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친구는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줬다. 울컥거리는 마음을 누르고 누른 채 엄마의 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 계기부터 고민에 대한 과정, 어느 정도 기울어진 내 마음까지 모든 것을 털어놨다.


엄마는 그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아버지가 떠났고 강아지도 떠났고 나는 멀리 살았다. 나에겐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난 이미 익숙해진 혼자만의 집이지만 엄마에겐 적막하고 떠난 사람들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 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만 가득한 곳에 엄만 남겨졌다.


아빠가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 강아지가 마지막 생명을 태우는 동안 엄만 아플 시간도 사치였다. 언제나 꿋꿋해야 했고 버텨야 했고 무너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엄만 그동안 버텼던 것이 한꺼번에 오는 것처럼 크게 아팠다. 멀리사는 딸이 걱정이라도 할까, 혹시라도 일에 지장을 줄까 봐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나에게조차 의지하지 않는 것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엄마의 외롭다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혼자 있는 집이 너무 외로워'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과 흔적이 가득한 이곳에 남겨져서 외로워' '아프거나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서 외로워' '외로워' 내가 엄마의 외로움을 너무 별거 아닌 입버릇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외로우니까라고 생각했다.


문득 내가 부산에 있는 이유가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부산으로 와서,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이곳과 함께해서, 지인이 많아서, 고향보다 익숙한 곳이라서. 단순한 이유만이 나열됐다. 오로지 부산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눈물 나게 절절하게 같이 있고 싶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주에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지금 하는 분야와 맞는 일을 찾아도 좋고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길이든 사랑하는 엄마의 곁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싶었다. 엄마의 청춘을 먹고 엄마의 땀을 먹고 엄마의 삶을 먹고 자란 딸이기에. 엄마가 나에게 휴식이자 그늘이 되어줬으니 나도 언젠가 엄마의 그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빗속을 오래도록 걸었다. 장황한 내 얘기는 끝이 없었지만 친구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무겁게 여러 갈래로 꼬여있던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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