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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거나 미치거나 Apr 17. 2021

일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질문 하나

-우다다 꼬마의 달리기



 여느 때와 같이 러닝을 하러 나갔다. 저녁 8시 반쯤, 러닝트랙 겸 산책로가 있는 수변공원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가족단위, 커플, 나처럼 혼자 나온 사람들로 밤 시간이지만 활기찬 분위기였다. 간단한 몸풀기를 하고 천천히 트랙을 도는데 앞쪽에 4-5세 정도로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그리고 아빠와 삼촌, 할아버지로 보이는 가족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그 가족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속도를 줄였다. 내 뒤에 있던 또 다른 러너는 오히려 속도를 내서 아이를 지나쳐 앞쪽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아이는 나를 보다가 자기 앞을 휙 지나가는 러너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다가가는 나와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던 아이는 몇 초 뒤, 우다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이 아빠와 삼촌은 예상치 못한 아이의 행동에 "어어?!" 하더니 아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뛰었다. 순식간에 무슨 한 팀이 된 것처럼 선두 러너뒤에 아이와 아빠 삼촌 할아버지 그리고 내가 줄지어 뛰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





꼬마를 보내고 남은 트랙을 달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의도, 목적’이 전혀 없는 상태인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힘. 그것은 무엇일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리 안으로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정말 파도에 휩쓸리는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인파 속에서 다수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몇 년 전 할로윈데이에 이태원에 갔을 때 제대로 느꼈다.)



 동조 현상을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로 '제3의 법칙' 이 있다. 3명 이상이 같은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도 따라 하는 현상을 말한다. 동조 이론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3명'은 인간이 '집단'이라고 인식하는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 한 명이 집단과 다른 행동을 할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영향력도 없지만, 두 명, 세 명이 되면 동조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도 그렇다.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내려 가는데 앞사람이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뛰어내려가고,  또 누군가 내 옆을 지나쳐 같은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면 괜히 조바심이 난다. 이 때 뒤를 돌아봤는데 다른 사람이 내 쪽으로 뛰어오고있다?! 쓰리콤보면 100퍼센트! 나도 뛰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해서 내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 이러한 현상은 오래전부터 생존을 위해 갖춰야 할  본능이 아니었을까. 기민하게 주변의 환경을 파악하는 능력은 야생에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필수적인 능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것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이 가기 위해 활용해야 한다. 노력과 의지력을 상대적으로 '덜'  소모하면서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가고 싶다면 '같은 방향으로 뛰어가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면 된다. 보이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크게 어렵지 않다. 심지어 앞-옆-뒤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 틈에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올해 초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한 뒤, 나는 ‘한달어스’ 의 글쓰기 프로그램에 등록했고, 1일 1글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나를 밀어 넣었다. 전문 작가가 글을 첨삭해 주는 것도 아닌데 한 달에 몇만 원을 들여가면서 이걸 하는 이유는 바로 ‘글 쓰는 사람들’ 속에서 달리기 위해서다. 등 떠밀려서라도 몇 발짝 앞으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 그렇게 엉거주춤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브런치 작가라는 작은 성과도 얻게 됐다.




 요즘의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움직이기는 하는데 의미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듯한 느낌이 든다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지금 내 앞에, 옆에, 뒤에는 누가 보이는가?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것이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바꿔보려는 작은 시도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누구의 등을 보고 달릴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해 보지 않은 행동’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나에게 잠시 웃음을 주었던 ‘우다다’ 꼬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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