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다시 찾은 시골

부모님의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순간

by 종양전문간호사

어제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대전 시골에 다녀왔다.

아빠가 태어나신 곳, 그리고 나와 오빠가 태어나고 나서 명절마다 아빠 차를 타고 찾아가던 곳이다.

그곳에는 늘 우리를 반겨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하지만 두 분이 돌아가신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그 시골집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 있는 그곳이 가끔은 궁금했다.

관리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른 그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추석이면 시골집 앞 감나무에서 장대를 이용해 감을 따곤 했다.

집 앞에 있던 소를 구경하던 기억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시골의 풍경이 그저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다.

시골집 뒷마당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릴 적에는 아침 일찍 출발해도 대전에 도착하면 늘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시고 꼭 안아주셨다.

설날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고,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달콤한 약밥을 만들어 주셨다.


그런 추억이 있는 곳이기에 몇 달 전부터 우리 가족은 시골에 한번 다녀오자고 이야기했다.

시골집 앞 산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도 들를 겸 말이다.

어렵게 시간을 맞추어 주말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삼 일 전, 아빠가 갑자기 “취소~ 취소~”를 외치셨다.

조금 의아했다.

아빠는 원래 먼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연세가 드신 뒤로는 더 그런 것 같았다.

혹시 장거리 이동이 부담이 되시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아 아빠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설득도 했다.

엄마와 함께 계속 이야기한 끝에 결국 우리는 다시 대전에 가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했고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 두 시간 정도 만에 대전에 도착했다.

시골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예전에 그렇게 자주 다니던 길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길도, 집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낯설면서도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시골집 앞에 차를 세우고 먼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로 올라갔다.

산을 오르는데 아빠의 숨이 점점 가빠지기 시작했다.

쎅쎅거리는 숨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간호사인 나에게는 더 예민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환자들을 보며 많이 듣게 되는 호흡 소리들—가래 끓는 소리, 쎅쎅거리는 숨소리—


몇 달 전에도 집에서 대화를 하다가 아빠의 숨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신 아빠에게 결국 만성폐쇄성폐질환이 생겼다.

그런데 오늘 산을 오르며 보니 아빠의 호흡이 예전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몇 번이나 쉬어 가며 천천히 올라가자고 말했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아빠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아빠의 연세가 어느새 일흔일곱.

세월이 흐른 만큼 몸의 기력과 기능도 자연스럽게 약해졌겠지만, 그 모습을 직접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저려온다.

그래도 우리는 천천히 산을 올라 결국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 도착했다.

챙겨 온 음식을 접시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인사를 드렸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말씀드렸다. 우리 가족의 근황도 말씀드리고 산소 주변도 조금씩 정리하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맥심 커피도 한 잔씩 타 드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린 뒤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그다음에는 시골집을 둘러보았다.


텅 빈 집이었지만 따스한 햇살이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먼지가 쌓인 툇마루 바닥, 정리되지 않은 마당의 풀들, 오래된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그곳에는 여전히 옛날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어디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미소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와 엄마와 함께 집을 둘러보며 옛날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챙겨 온 돗자리를 펴고 과일을 깎아 먹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도 우리 마음속에는 사라지지 않는 추억들이 있다.

그 추억 속으로 잠시 들어갈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는 행복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살다가도 가끔은 옛 추억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 보는 것도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일을 하고 계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어제 장거리 이동 때문에 혹시 피곤하지 않으신지 궁금해서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아빠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힘이 있었다.

어제 시골에 다녀온 뒤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골 소식을 전했다며 또 옛날이야기를 한참 들려주셨다.


나는 아빠와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빠가 잠시나마 젊었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다녀올 수 있었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날 좋은 날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함께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나눌 추억이 있다는 것.


햇살이 드는 오후

그날 하루의 감사함 덕분에

마음이 더 평온해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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