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이벌이 오리가 될 줄이야, 과연 그녀의 선택은?
처음엔 건전지 넣는 장난감들이 좋았다.
그녀에게 건전지 장난감을 하나 보여주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신세계가 열렸다.
여유롭게 설거지도 할 수 있고
긴 머리를 정성스럽게 감을 수도 있고
구석구석 방청소도 할 수 있고
디카페인 커피 한잔도 할 수 있었다.
4개월 그녀를 보러 집에 친구가 왔다.
"장난감이 왜 이렇게 많아?"
"월화수목금토일 노는 장난감 다르게 해 주려고"
"왜?"
"우리도 맨날 같은 것만 보면 지겹잖아?"
"근데 저 장난감은 왜 이렇게 정신사나워?"
(러버덕 오리계단 미끄럼틀을 보며)
"저걸 제일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거 맞아? 그냥 정신 빼놓는 거 같은데."
"그런가? 난 집중해서 보길래 좋아하는 줄"
"너무 정신없고 시끄러워. 버려."
"저거 있어야 집안일하는데... 고민해 볼게."
친구가 집에 가고 오리 장난감과 마주 앉았다.
불현듯 건전지를 빼보고 싶었다.
건전지를 뺀 건전지 동력 장난감에서
아무 불빛도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지자
4개월 그녀에게서 5초 이상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동시에 너무나도 조용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거실에서 그녀는 그제야
나를 보기 시작했다.
러버덕 오리계단 미끄럼틀은 내가 산 것은 아니었다.
오리들이 계단을 차례차례 올라갔다가
미끄럼틀을 타고 차례차례 내려온다.
지인에게 처음 받아서 건전지를 갈아 끼우자
세상 화려한 불빛과
높은 데시벨의 음악 소리가
4개월 그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개월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오리들에 몰입되어 있었다.
이 틈을 타 샤워를 급하게 하고 나와보니
아직도 몰입 중인 그녀.
그렇다면 이때다 싶어서
설거지도 하고 왔는데
여전히 몰입 중인 그녀.
순간 장난감 전원을 끄고
그녀를 보자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보지 않고
오리만 보고 있었다.
충격적 이게도
그녀를 낳은 내가 노오란 오리에 진 것이다.
건전지동력을 잃은 오리 12마리는
망부석처럼 굳어있었고 나 또한 굳어버렸다.
그녀의 눈에서 상호작용이 없음이
순간 느껴진 것이다.
오리 따위에게 내가 질 수는 없지 싶어서
바로 까꿍과 도리도리 필승 아이템으로
그녀의 관심을 나에게로 돌렸다.
다시 내가 알던 예전의 그녀가
나의 까꿍에 화답하며
미소를 날리고 나서야
나는 안도했다.
나의 라이벌이 오리가 될 줄이야
그렇게 오리들은 나에게 유배를 당했고
건전지로 먹고사는 장난감들을 이제
하나씩 하나씩 같이 유배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다.
유아심리학 수업을 들을 때,
방송매체에 노출된 아이들이
실제 집중을 하고 있는지를 뇌파로 측정해 보면
보고는 있지만 멍 때리고 있는 것 마냥
아무 뇌에서 작용이 없다고 배운 것이 생각났다.
그녀도 오리를 보며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그냥 멍 때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어 줬던 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