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와 손주를 보며 내 마음속 욕심을 버려 봅니다.
이제 5개월 그녀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순식간에 뒤집었다가
슈퍼맨 자세로 온몸을 펼쳤다가
손가락 하나라도 꼬무작 거리며 움직인다.
그녀의 폭발적인 에너지 분출을 위해 오늘은 공원 산책을 나갔다.
언제 에어컨 없이 못 살았나 싶을 정도로 시원해진 날씨에 산들거리는 바람이 어우러진 가을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5개월 그녀의 몇 가닥 머리카락을 바라보기 위해 잠깐 공원 벤치에 앉았다.
조금뒤 옆자리 벤치에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초등학생 손자가 왔다.
남자아이인데 핑크색 옷을 입은 긴 머리 인형을 애착인형처럼 계속 들고 있길래 시선이 갔다.
다른 손에는 공을 계속 튀기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 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에게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머니 아파? 내가 밀어줘?"
"아니, 괜찮아."
"할머니 아파? 내가 밀어줘?"
"손주 괜찮아."
"할머니 아파? 내가 밀어줘?"
계속 같은 질문에 할머니는 어느새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손주는 계속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같은 질문이 계속 들리자 나도 모르게 할머니 쪽으로 시선이 갔는데
이미 할머니는 5개월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계셨다.
아무 말 없이 정말 단어 그대로 물끄러미 말이다.
우두커니 할머니의 시선이 5개월 그녀만 바라보고 있는데도
손주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머니 아파? 내가 밀어줘?"
할머니는 여전히 대답 없이 5개월 그녀를 잠깐 더 보시더니
손주를 다시 지그시 보셨다.
순간 할머니의 눈에 차오르던 눈물이 보였다.
급하게 할머니는 손주에게 대답하셨다.
"그래, 밀어주렴."
그렇게 할머니의 휠체어를 손자가 뒤에서 밀며 멀어져 갔다.
할머니는 5개월 그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슨 생각을 하시다가 어떤 생각이 닿아 눈물이 나셨을까.
5개월 그녀를 보며 할머니가 눈빛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건강하렴. 건강하게 자라렴.'
5개월 그녀가 내 뱃속에 있었을 때 노산에 초산이던 나는 걱정이 되었다.
노산은 해야 하는 검사도 훨씬 더 많았고
기형아 검사 결과도 혹시나 불안했고
피검사 수치가 좋지 않으면 링거도 맞았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봤던 질문은
"딸이면 좋겠어? 아들이면 좋겠어?"
"건강하기만 하면 돼."
"누구 닮았으면 좋겠어?"
"건강하기만 하면 돼."
하지만 막상 5개월 그녀를 건강하게 만나고 나니 욕심이 스멀스멀 생겨났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커졌다.
키도 더 크고
머리도 더 작고
얼굴도 더 예쁘고
피부도 더 뽀얗고
성격도 더 좋고
머리도 더 똑똑하고 등등.
오늘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의 5개월 그녀를 향한 눈빛은 다시 한번 나를 일깨웠다.
건강하렴. 건강하게만 자라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