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던 엄마가 보기에 신기했던 백화점 인파 속에서 그녀에게 다짐한다
항상 평일 오전 이 시간이면 나의 모습은 셋 중에 하나였다.
회사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며 타이핑을 치거나
회사 사람 누군가와 회의를 하고 있거나
고객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제 5개월 그녀가 생기고 엄마의 삶을 살게 되면서
위의 세 가지 모습 중에 하나도 지금의 나와 일치하지 않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도 회의를 하지도 통화를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5개월 그녀와 고군분투 육아를 하고 있을 뿐이다.
집에서 고군분투할 바에야 밖에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백화점을 갔다.
베이비실(수유실)도 잘 되어 있으니 후다닥 기저귀만 챙겨본다.
평일 오전 11시 24분.
백화점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5개월 그녀와 나만 백화점에 있을 줄 알았다.
평일 오전 점심시간도 되기 전이니 당연히 사람이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띨래띨래 아기띠를 하고 그녀와 함께 백화점에 도착했다.
이럴 수가
평일 오전 백화점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평일 이 시간에 사무실에 앉아있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하긴 5개월 그녀가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 내가 회사원이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오후반차를 쓰고 카페에 가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럴 수가
평일 오후 카페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평일 이 시간에 사무실에 앉아있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예비 워킹맘인 나의 입장에서는 사무실에 앉아있을 시간에 백화점에 와보니 어색했다.
타이핑을 치고 있어야 할 손가락이 가만히 있어서 어색한 걸까?
회의를 하며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목의 핏대가 어색한 걸까?
고객과 전화통화하며 생기는 귀와 뺨에 느껴지던 땀이 차지 않아서 어색한 걸까?
5개월 그녀는 이미 알록달록 번쩍번쩍 빛조명에 시선을 휘어잡혀
이마에 5만 4천 개의 주름이 잡힐 정도로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5개월 그녀와 같은 공간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급 오후반차를 옆자리 동료와 같이 쓰고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났다.
(물론 그때도 평일 오후 카페 야외석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이 사람들은 이 시간에 여기 있으면 돈은 어떻게 버는 걸까?"
"모두가 우리처럼 회사를 다니는 건 아니야."
"그럼 돈은 뭘 해서 벌어?"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
"난 회사원밖에 몰랐어. 돈 버는 방법을."
"아쉽네.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데.
이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으면서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도 많아."
"그러게."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았다면 좋았을 걸. 아쉽네."
"근데 내가 좋아하면서 잘하기까지 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긴 나도 아직 모르겠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고, 2010년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우리 집은 딸은 회사 취직하고 아들은 사업했으면 하는 간접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나의 회사 취업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연속의 시간 속에 갇혀서
해가 바뀌면 제일 먼저 빨간 날부터 체크했던 평범한 직장인 말이다.
물끄러미 5개월 그녀의 천장에 꽂힌 눈동자를 보며 다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엄마는 하나만 해주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거 찾아주기.
좋아하면서 잘하기까지 하다면 너무나 감사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걸 알면 힘들 때 분명 버틸 수 있는 힘이 될 거야.'
그렇게 백화점 인파를 뚫고 뚜벅뚜벅 걸어가며
그녀에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