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제가 잘못 들은 걸까요?
5개월 그녀를 데리고 백화점에 처음 가봤다.
문화센터가 백화점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와 백화점에 가보게 된 것이다.
막상 가보니 왜 백화점에서 문화센터를 운영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문화센터 옆에는 아이 옷과 아이 가구를 판매하고 있다.
문화센터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동선이
아이 관련 물건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백화점에서는 유모차도 대여해 주다 보니 아기띠를 하고 가면
불쌍한 내 어깨를 위해 유모차에 5개월 그녀를 태울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백화점이 5개월 그녀와의 외출에 적합했던 가장 큰 이유는 베이비실(수유실).
5개월 그녀의 기저귀를 언제 갈지 미리 알 수 없는 나의 입장에서는 동선 안에
베이비실이 존재한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문화센터 클래스가 끝나고 모유수유와 기저귀를 갈러 베이비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남. 자. 화. 장. 실. 인. 줄.
남자들만 너무 많아서 놀랜 것이다.
기저귀 가는 아빠.
이유식 주는 아빠.
젖병을 든 아빠.
유모차 주차하는 아빠.
전자레인지 앞에서 이유식 데우는 아빠 등등.
그랬다.
베이비실은 아빠들로 가득가득했다.
예전에 친구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남편이 육아 많이 해?"
"응, 많이 도와줘."
"육아는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응???"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야."
육아를 함께 하는 아빠들이 이렇게만 많다니.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적이고, 뭔가 시대가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는 것 마냥 뿌듯했다.
아빠들에게 엄지 척을 마음속으로 날리며
수유실에서 5개월 그녀를 배부르게 먹이고
베이비실을 나오니 아기 옷을 고르고 있는 엄마들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육아 함께 하는 남편이 있어서 참 좋겠어요.'
부러운 눈빛으로 그녀들을 보는데 대화 한 소절이 들렸다.
"내 남편은 밖에서만 아빠 노릇 해.
집에서는 하나도 안 하면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안 들었으면 좋았을 말을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다음 대화를 듣고 나니 웃음이 났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밖에서라도 하는 게 어디야."
웃픈 대화를 듣고 나서 5개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사는 게 다 그렇대.
넌 어떻게 살래?"
이제 5개월을 살아 본 그녀는 사는 게 어떤 느낌일까?
곧 40년을 살게 될 나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5개월 그녀도 곧 40년 나도
육아가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5개월 그녀를 기르는 것은 아빠와 엄마 공동의 몫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