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빈아, 나희는 어디 있어?” “나희는 엄마 뱃속에 있지.”
“그럼 아빠는 어디 있어?” “아빠는 회사에 갔지.”
“서빈아, 아빠도 그려줘야지. 아빠 서운하겠다.” “종이가 작아서 그랬지.”
서빈이의 설명에도 내 가슴이 철렁한다. 서빈이의 그림에서 자주 아빠의 모습이 없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즘 2시에 출근하고 11시에 퇴근하는 아빠의 일정 때문에 아이들과 마주칠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는 자고 있는 아빠의 모습만 보고, 저녁에는 아빠가 퇴근할 때 아이들은 이미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었다.
몇 주간 이어진 이런 패턴 속에서 서빈이와 나희는 아빠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엄마를 더 많이 찾고, 아빠에게는 다소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아빠한테 오라하니 싫다하는 막내의 행동에 멈칫해하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내가 돈버는 기계인가' 대한민국 아빠들에게 그런 생각은 몇십년 째 없어지지 않는 꼬리표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 노동의 대가가 사랑이나 존경이 아닌 단순히 돈으로만 치환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과 아빠 사이의 거리감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 속에서 아빠들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부심보다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집에 돌아와도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고, 가족과 보내는 주말마저 피로에 지쳐 집중하지 못하다 보니, 아빠와 아이들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아이들에게 아빠란, 이제 점점 ‘돈을 벌어오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느껴지게 되고, 이런 인식 속에서 아빠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마저 고독을 느끼며 존재감을 잃어간다. 이러한 현실은 단지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많은 가정이 겪는 공통된 고민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아빠는 단순히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눈꽃축제를 가던 날, 내가 좋아하던 장난감을 손수 고쳐주시던 모습, 어깨에 태워주시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이런 기억들이 아빠와의 끈을 이어주는 고리가 되었다. 그래서 서빈이와 나희에게도 그런 추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가족의 중요한 일부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엄마로서 나는 가족의 중심에서 소통의 역할을 해야 한다. 아빠가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다리 역할 말이다. 아이들이 서운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아빠가 왜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아빠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아빠가 오늘도 서빈이랑 나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단다. 이번 주말엔 아빠랑 놀아볼까?”
또한, 남편에게도 아이들과의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주말에는 꼭 아빠가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하고, 아이들과 놀면서 좋은 기억을 쌓게 하려 한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아이들이 아빠를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내가 돕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의 투박한 말투와 행동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해석해주는 것도 엄마의 역할이다. “아빠가 이 말을 하신 이유는 이런 뜻이야” 하고 설명해주면 아이들도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아빠가 가족 안에서 점점 더 고립되지 않도록,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제법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가족의 다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다리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오가며 더 단단한 가족이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