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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뇨 Apr 26. 2023

열탕에 들어가는 마음

요즘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사우나를 가고 있다. 코로나가 활기 칠 때는 쉽게 가지 못했는데 포스트 코로나기에 시간 날 때마다 가고 있다. 따뜻하다 못해 몸이 지져질 것만 같은 열탕에 들어가 나의 참을성을 시험할 때마다 비웃음이 나온다. 사우나는 나에게 친숙한 공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추억이 담겨있다.


아버지와의 추억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는 잠시동안 사우나를 운영하셨다. 호텔 안에 있던 사우나인데 등에 호랑이나 용문신이 있던 거구의 형님들도 오셨고 유명인들도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다른 목욕탕보다 크기가 크다 보니 항상 한적했다. 아버지는 자정이 되면 욕탕의 물을 비우고 열심히 청소하셨다. 그리고 다시 물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굳이 그렇게 매일 물을 갈아야 할까? 아버지께서는 사람은 항상 정직해야 한다고 했다. 매일 물을 갈고 깨끗함을 유지해야 그것이 손님을 대하는 예의라고 말씀하셨다.


브랜드 전략 기획자의 입장에서 보니 이제야 예의를 알 것 같다. 항상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매일 같은 온도를 맞추는 일은 사우나다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욕탕의 디테일도 챙기셨다. 욕탕의 물을 항상 넘칠 듯 말 듯 가득 채웠고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물은 흘러넘쳤다. 그 넘침의 사소함은 깨끗한 욕탕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뒤늦게 깨우쳤다. 이러한 사소한 디테일도 챙기던 아버지, 아버지의 정직함과 디테일한 감각을 난 물려받았을까?

출처: 서울의 목욕탕, 박현성, 6699press / 표지 또한 같은 출처


이상한 허세를 부리던 아이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호텔에 있는 사우나를 갔다. 사우나를 가는 것이 습관이었고 호텔 사우나면 다 좋다고 생각했기에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선생님 허락 없이 사우나를 갔다. 애들은 그런 내가 신기한지 이틀 날부터는 나와 함께 목욕탕을 갔다. 친구들이랑 목욕탕을 가면 항상 하던 이상한 버릇이 있다. 미칠 듯이 뜨거운 열탕에 혼자 들어가 너희들 보다 목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뽐냈었다. 그럴 것도 그런 게 어렸을 때는 모두 온탕을 좋아하고 아무도 뜨거움을 참고 열탕에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게 마치 자랑인 양 수학여행마다 친구와 함께 목욕탕을 갈 때마다 열탕에 들어갔다. 혼자서는 5분도 참지 못했지만 애들 앞에서는 10분이나 참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친구들 앞에서는 열탕에 제일 오래 남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은 굳이 그래야만 하냐고 물어보지만, 난 그것을 끈기라고 한다. “자식들아 이건 끈기라고.“



대학시절의 목욕탕

대학시절은 술 그 자체였다. 디자인=술이라고 잘못 배웠는지 과제 없을 때도 술이었고 과제 이후에도 술이었다. 당시 술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나는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습관처럼 목욕탕을 갔다. 그게 몸에 좋지도 알고 있으면서도 몸을 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대학 시절 목욕이란 술에 찌든 내면을 씻는 것과 같았다. 오후 수업을 가야 되지만 속은 뒤집어졌고 과제도 엉망일 때마다 매번 도망가듯 목욕탕을 갔다. 목욕탕에서 생각을 가다듬고 친구와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 후 밖으로 나왔다. 그 다짐은 불가 5시간 짜리였지만 말이다.



휴식을 취하는 법

어렸을 때부터 사우나에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목욕탕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탕에 앉아 이리저리 바뀌는 물결을 보면서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데운다. 코로나 2년 동안 수없이 목욕탕을 가고 싶었고 하루는 못 참겠는지 개인 욕탕도 찾아보았다. 값이 꽤 나가 포기했지만 포스트 코로나만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출처: Dezeen


최근 목욕탕을 다니며 휴식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대행사를 다니며 일에 시달리다 보니 쉬는 방법을 몰랐었는데 사우나는 나에게 휴 그 자체였다. 내가 휴식하는 방법은 사우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데우며 뇌를 쉬게 하는 것이다. 이리저리 여러 생각이 들 땐 열탕을 가던 냉탕을 가 생각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다시 온탕에 앉아 물의 흐름을 관찰한다. 사소하지만 사우나에 갔다 오면 모든 게 회복되어 월요일을 시작할 용기가 생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생긴 목욕탕의 습관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 도움이 될지 몰랐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릴 때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목욕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꽤나 멋지고 유익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금요일 밤이면 워털루 다리 부근에 위치한 광고사 사무실을 떠나 켄티시타운으로 돌아왔고,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목욕을 하면서 한 주간 쌓인 장삿속의 흔적을 씻어내고 소설가의 본분을 되찾곤 했다.
- 한밤의 아이들 I 서문, 살만 루슈디, 문학동네


목욕탕을 가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나만의 취향이다. 수많은 추억이 사우나에 깃들어 있고 피식피식 웃을만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나이가 한 살 먹을수록 예전에 취향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취향은 계속 바뀌겠지만 오래된 이 취향만큼은 지키고 싶다. 결국 사우나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은 취향을 넘어 나에게는 휴식이고 회복탄력성이다. 내일도 목욕탕을 가야겠다. 하루를 더 개운하게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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