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있는 브랜드 전략 기획자
어느 날 책을 읽다 재밌는 면접 질문을 보았다. “감도가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감도? 감도란 무엇일까. Creative 영역에서 업을 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단어가 감도다. 대행사에 일하면서 그 단어를 참 많이 들었다. ’디자인 감도를 높여라’, ’브랜드의 감도와 알맞은 단어를 찾아라‘ 등 감도라는 말에 갇혀 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감도라는 단어만큼 센스라는 단어도 왕왕 들었다. ’좀 더 센스 있는 단어’, ‘센스 있는 기획서’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센스라는 단어는 상황에 따라 wit, 눈치, taste, 의식 수준 등 수많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마치 디자인 등의 단어와 비슷하다. 어떤 문장과 같이 오는가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달라진다.
감도의 사전 의미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의 정도. 그리고 센스의 사전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감각이나 판단력이다. 둘 다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면 센스, 감도라는 말이 둘 다 해당되는 말인 ’감각‘은 어떨까. 감각의 사전 의미는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나 느낌이다. 그렇다면 감도, 센스를 감각으로 바꿨을 때 감각(사물에서 받는 인상)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 좋은 사람은 무슨 말일까. 우리는 하루에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를 받고 소비한다. 미디어에게 지배받는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사람들은 하루 4000개에서 1만 개의 광고에 노출된다고 한다. 또한 IBM에 따르면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내는 하루 정보량은 약 25억 GB(기가바이트)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양의 데이터를 우리는 보고 소비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 많은 데이터와 사물 사이에서 감각이 좋은 사람이 선정한 데이터와 이미지가 좋은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한다는 말이 아닐까?
미즈노 마나부의 센스의 재발견에서는 ‘센스 좋음‘이란 수치화가 될 수 없는 사실과 현상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이라 하였다. 그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평균치가 존재해야 한다. 미즈노 마나부는 이어서 ‘평범함이야말로 센스가 좋다/나쁘다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고 하였다. 우리가 평범한 이미지, 평범한 디자인을 알아야 그보다 뛰어난 이미지나 디자인을 뽑을 수 있다. 보통보다 뛰어난 이미지 또는 디자인이 센스 좋음(감각이 좋은)이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조합하면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 좋은 사람은 평범함을 알아 평범함보다 더 이쁘거나 뛰어난 디자인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브랜드 전략 기획자에게 감각이란 수많은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도출하는 것과 맥락에 알맞은 이미지를 뽑는 것이다. 유의미한 데이터, 맥락에 알맞은 이미지라는 말은 참 애매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의미한 데이터는 주제에 알맞은 데이터이다. 스티브 잡스가 졸업식 연설에서 말한 것과 같이 두 개의 점을 잇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정보를 조합하여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면 맥락에 알맞은 이미지는 무엇일까? 말과 글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지만 기획자가 생각한 전체 기획안을 100% 전달하기 힘들다. 맥락에 알맞은 이미지를 선정하는 것은 미적 감각과도 연결된다. 컨셉을 잘 보여주는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브랜드 스토리를 잘 표현하는 이미지 등 기획자는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상황에 이미지를 사용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여기서 감도 높은 이미지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그 말은 즉슨 맥락에 알맞은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브랜딩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실력이요? 실력은 결과로 나오는 것이지, 자질이나 요소는 아니죠. 이 질문에 사람마다 다른 답을 하겠지만, 딱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저는 감각을 택하겠습니다. 감각은 여러 의미를 포괄합니다. 우선 미적 감각이 있겠고요. 현상을 바라보는 능력도 감각입니다.
- 전우성, 『마음을 움직이는 일』, 북스톤
학부생 때 친한 교수님께서 매번 하던 말이 있다. ”나는 술을 마실 때도 공부를 해. 이게 왜 참이슬인지. 어떻게 해서 참이슬이 됐는지를 생각하는 거지.” 솔직히 그때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술 마실 때도 그런 생각을 해야 할까? 항상 궁금증을 갖고 살아가라는 말인가? 물론 저 말에는 호기심을 갖고 살아가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범한 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으라는 것이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왜 문고리는 이렇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왜 헬스 홍보 광고지는 이런 형식으로 디자인되는지 등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나하나 의식해서 다르게 바꾸면 얼마나 내가 판에 박힌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 실감할 것이다.
- 미즈노 마나부, 『센스의 재발견』, 하루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계속 살 수는 없지만 시간을 내면서 다른 게 바라보려 노력한다면 감각이 좋아지지 않을까? 새로운 생각과 idea들이 떠오르며 그것을 구현시킬 방법까지 연속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가까이 있는 것부터 낯설게 보려 노력해 보자. 그렇게 됐을 때 우리 속에 있는 감각들을 깨워날 것이고 점점 날카로워질 것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외 기획자가 센스를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미즈노 마나부는 확신을 버리고 객관적인 정보를 모으라 추천한다. 브랜드 전략을 진행할 때 리서치는 필수 요소이다.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찾고 모은 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은 상황 파악도 있지만 평균을 아는 것 또한 있다. 현재 내가 속한 브랜드 또는 클라이언트 브랜드는 어떤 상황에 있고 경쟁사는 어떻게 브랜딩을 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파악하는 과정에서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고 브랜드 평균이 도출될 수 있다. 그 업계의 평균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업계의 평균을 파악했을 때 감각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업계의 평균에서 약간의 디테일을 더해 업계에서 보지 못했던 컨셉을 만들 수 있고 다른 업계에서 사용하는 어법을 갖고 와 그 업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만들 수 있다. 확신을 버리고 객관적인 정보를 모아 평균을 파악하는 것, 이후 평균에서 약간의 디테일을 더하는 것이 사물에서 좋은 인상(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니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하자. 끊임없이 수집하여 나의 감각을 키우자.
확신을 버리고 객관적인 정보를 모으는 일이야말로 센스를 좋게 만드는 중요한 방법이다.
- 미즈노 마나부, 『센스의 재발견』, 하루
감각, 센스, 감도는 참 모호하다. 어느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단어다. 그러다 보니 감각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리서치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들여다봤다. 책마다 감각이라는 말을 달리 쓰지만 감각을 쉽게 말하자면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다. 한 끗이 디테일이 더해진 결과물, 컨셉 등이던 누가 봐도 매력적인 이미지를 뽑아내는 것이던 사물에서 좋은 인상을 빠르게 파악해 그런 사물을 고르는 능력이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감각은 키울 수 있다. 객관적인 정보를 모으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 감각을 날카롭게 깎아 나가자. 마지막은 츠타야 서점의 CEO의 말로 끝매즘을 하고자 한다. 다들 감각을 키워 감도 깊은 기획자가 되길 바란다.
감각이라는 건 결국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거든요. 다양한 선택지를 경험해 본 사람이 ‘이것이 좋다’고 고르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고르는 것은 질이 전혀 다릅니다.
마스다 무네아키, 트렌드 구독 서비스 <롱블랙> ’개인의 시대, 기획자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