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특검 소환를 앞두고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그는 사진 찍히기를 유달리 꺼리는 관료였다. 정문 대신 지하 주차장으로 출근했고, 구내식당으로 이어진 청사 구름다리는 전면 선팅됐다. 빛을 차단한 통로를 통해 그는 취재진의 시선을 피해갔다.
2022년 2월,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윤석열은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군중 앞에 섰다. 국회에서 그를 취재하던 기자는 그 장면을 보고 멈칫했다. 구름다리 뒤로 숨던 그가, 수백 명 앞에서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일명 ‘윤퍼컷’. 묵직한 체격애서 뿜어낸 기세가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원고 없이도 한 시간 연설이 가능한 달변가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이미지가 결정적일 때가 있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 데엔, 그 어퍼컷 이미지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당선 후 첫 민생 행보로 그는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시장 안 국밥집에서 상인들과 나란히 앉아 ‘꼬리곰탕’을 먹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밥 이미지가 겹쳐졌다.
탈권위, 친서민. 윤 대통령은 익숙한 이미지 전략을 따르고 있었다.
취임 직후 그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도어스테핑을 도입했다. 대통령이 출근하며 기자들과 주고받는 약식 회견. 이전까지는 대통령의 육성을 듣기 힘들었다. 대통령실기자단은 매일 아침 대통령을 마주했다.
진정한 ‘이미지의 민주화’였다.
하지만 그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어스테핑 현장엔 가림막이 생겼고, 대통령은 다시 모습을 감췄다.
명분은 보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시 대통령실 비서관과 MBC 기자 사이의 설전을 떠올렸다.
그 무렵부터 윤 대통령은 카메라를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은 취재보다 대기 시간이 더 길어졌다. 멀뚱히 책상에 앉아 있는 날이 늘었다.
그 사이 굵직한 뉴스는 계속 터지고 있었다. 한동훈 대표와의 문제, 의정 갈등, 명태균 게이트 등등 그러나 대통령실사진기자단은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다. 전속 사진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신문에 실린 윤 대통령의 사진 바이라인은 “대통령실 제공”으로 채워졌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 기자들은 현장에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잠긴 브리핑룸 앞에서 기자들은 문을 열어달라 외쳤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묵묵부답이었다.
11일 뒤, 국회는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탄핵 직후 윤 대통령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 역시 전속 제공이었다.
문득 기자는 2020년 겨울이 떠올랐다. 검찰총장 윤석열을 찍기 위해, 기자들은 매일 대검 징검다리 위에 섰다. 언제 나올지 모를 그를 위해, 초망원 렌즈를 들고 목을 꺾은 채 기다렸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의 고통이 이해됐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