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이런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식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을 넘어선다고.
새벽에 한 통의 편지를 받고 가슴이 시리도록 울었다.
아이의 생일 축하편지였다.
나는 이 아이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날 중, 단 하루도 이 만남에 대해 기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눈이 흘겨질 만큼 아이가 얄미운 날도 아이의 성장의 단계에 맞추어 늘어가기도 하지만, 그건 넓고 깊은 대양의 표면에 노닐던 물고기가 튀기는 물방울 정도의 것에 지나지 않는 마음이다.
내 마음은 늘 그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그득 차 있다. 그래서 깊은 속은 잔잔하면서도 늘 표면은 출렁이는 바다처럼, 내 수면 위에서 아이가 잘 노니며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게 그녀를 위한 지지를 위해 애쓴다.
그렇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이제는 생일이라는 날짜에 감각도 없는 나이라 덤덤하다.
아침을 준비하러 일어난 새벽, 어두컴컴한 주방으로 나서니 식탁 위에 네모난 무엇인가가 놓여있었다.
조명을 켜고 보니, 수신 발신인을 적은 작은 글씨가 아이의 것이다.
아, 오늘 내 생일이지! 불과 몇 시간 전 잠들었을 아이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과제할 것이 있어 조금 늦게 자겠다는 아이와 인사하고, 10km 러닝의 후유증으로 밀려온 급 피로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먼저 잠이 들었었는데... 바쁜 그 틈에 엄마 생일이라고 손 편지를 눌러 적어 식탁 위에 곱게 올려놓아둔 것이다.
단 10분이라도 더 많이 잤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생각지 못한 편지글에 나는 아침부터 울보다.
편지글 속에 아이의 요즈음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고, 그 정신없는 마음속에서도 엄마가 상처 입을까 자신의 까칠한 표현에 대해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도 애틋하고 또 대견했다.
이맘때 제주로 늘 며칠 혼자 여행 가길 좋아한 엄마를 떠올려 배려하는 마음까지도...
내가 뭐라고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가.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내 딸에게만큼은 성실하게 제대로 된 사랑으로 표현하며 살겠다고 늘 다짐하며 지냈다.
때론 표현 방식의 부적절함으로 나 역시 아이를 힘들게 했고,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때의 아이를 향해 샐쭉한 마음도 가졌었다. 그 오만한 사랑에 대하여 반성한다.
오늘의 편지는 그 벌이다.
형언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아이가 내 아이로 '나의 세상'에 와 주었음에 감사한다.
나는 이 아이의 마음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다. 내 쪽에서 베푸는 '내리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늘 이 아이는 이렇게 무한히 나를 용서하고 또 인내하는 사랑을 올려 준다.
이제는 엄마의 제2의 삶과 꿈을 위해서도 잊지 않고 응원해 줄 줄 아는 기특한 아이다.
처음 만난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이 아이에게 먼저 다가오고 친해지고 싶다고 손을 내미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벌써 이렇게 깊이 무르익은 아이가 우리 집에 산다.
이것이 자랑스럽고, 무한히 감사하다.
부디 건강하게 나의 곁에서 웃음을 더 많이 터뜨리면서 봄날의 개화처럼 그렇게 잘 피어나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