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간 소설이 나왔다.
<나의 친구들>이라는 장편 소설인데, 가정폭력과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는 동네친구들의 끈끈한 유대와 사랑,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음 시작부터 애틋한 조바심으로 힘이 들게 한 소설이다.
소설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럽고 질투 나면서도 그래서 너무나 가슴 아프다. 이 글에서는 소설의 서평을 쓰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봄 책에 푹 빠져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소 두껍지만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긴 분량이 압축되어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이 책에서 표시를 한 부분들을 다시 들춰보니, 요즈음의 나의 고민과 연결되는 지점에 모든 밑줄이 닿아 있었다.
바로 부모로서의 고민.
그저 아이가 하는 몸짓과 어설픈 귀여운 말에 신나고 뭘 하든 신기하고 행복했던 유아기,
점차 사람 모양과 구실을 해가며 자아 찾기를 시작한 아이를 중심 잡아주는 유년기, 그리고 아이가 자아 독립을 해 나가며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깨달아가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
그렇다.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부모 됨'을 고민하게 만드는 내 아이는 지금 청소년기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의 방향이 아니라 어떤 것이 내 아이에게 '보다 적절한 것'인지를 수도 없이 생각해야 한다.
정답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헤아릴 변수도 많다. 헤아려지지 않는 것이 애초에 '변수'라는 이름의 뜻이겠지만, 아이보다 더 흔들리고 방황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
이 지점에서 만난 책의 한 문장이 있었다.
'부모의 기본적인 기능이란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배에 실린 바닥짐처럼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가 뒤집힌다. '
배의 평형을 맞추기 위한 바닥짐. 단단히 매여 있지 않고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순간 배는 순식간에 평형을 잃고 침몰할 수 있다. 부모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너무나 잘 와닿게 표현한 문장이었기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단계만 넘어갈 뿐 자식을 키우는 조바심에 끝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저 존재하는 것', 부모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더 와닿을 것이다. 어딘가에 따로 떨어져있더라도 그저 계신 것만으로도 채워져 있는 마음 같은 것들.
빈자리가 되어서야만 깨닫는 그 존재감의 크기라는 것들.
부모라는 이름은 정말이지 이상한 것이어서, 아이의 탄생으로 스위치 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경험해 봐야만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때부터는 책의 문장처럼 '아이의 모든 아픔과 울음이 부모의 것이 되고, 아이의 모든 웃음과 기쁨도 부모의 것이 된다.'
아이의 울음이 강이라면 나의 울음은 어느새 바다가 되어 있고 , 아이의 웃음이 하늘이라면 나의 웃음은 우주만큼이나 커져 있다.
그것이 부모의 기본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존재하면서 아이를 넉넉한 크기로 품어주는 일, 힘들 때도 있지만 그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사는 것.
오늘은 다른 날 보다 두세 번 더 안아주어야지,
고운 입에 더 맛있는 것 한 입 더 넣어주어야지.
바쁜 학교 학원 일정 때문에 예전처럼 봄꽃 나들이를 데리고 나가지 못해 봄축제 한창인 요즘 계속 미안했는데,
프리지어라도 한 다발 방에 꽃아 두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