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했다는 말.
편안해지고 싶어서 했던 말이었다.
미워해서 뭐 하겠냐고, 나이 들어가는 저분들을 붙잡고 원망해서 뭐 하겠냐고.
그분들 각각의 인생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부분이 있다고.
아마도 본인들도 받지 못한 사랑이라, 배우지 못한 사랑이라 내게도 그러했을 거라고.
이제 그만 용서하고 내려놓아야 내가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러한 줄 알았다.
내가 한 용서가 단순히 '머리'끝에서만 이뤄진 일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몸이 아프기 시작한 엄마를 모시고 언니, 동생과 시간 맞춰 병원에 우르르 몰려다니던 때였다. 서류를 접수하고 진료 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같이 기다리는 일이 다 이긴 했지만, 함께 그 시간들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일은 내팽개치고 선택한 날들이었다.
건강할 때도 그다지 깔끔하게 살림살이를 꾸리던 엄마가 아니었지만 아프고 난 뒤로 친정집은 더 엉망이 되었다.
특히나 엄마가 머무는 방이 염려가 되었다. 먼지 뿌옇게 쌓인 아무렇게나 쌓아둔 이불과 엄마의 낡은 옷가지들, 침대 밑으로 잔뜩 밀어 넣어둔 엄마의 쓰레기들, 책장에 꽂힌 책들에 수북이 쌓인 먼지들을 타랄 털어내고 싶었다.
햇빛 냄새나는 포근한 침구 위에서 몸을 누이셨음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였다고 집안일에 신경 쓰일 일 없이 말끔하게, 손갈 일 더없이 간편하게 치워두고 싶었다.
엄마로 인해 평생을 다쳐온 내 마음은 깡마른 엄마 모습을 본 뒤로 흐물흐물 녹아내려 있었다. 안 그래도 눈물 많은 내 마음엔 병자가 되어버린 엄마가 연민 덩어리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엄마를 더 미워하는 일은 나의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모든 걸 내려놔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전환시켰다.
바쁜 동생과 일정을 맞추어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걸려 친정을 찾았다. 청소용품을 새로 마련하고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의 짧은 몇 시간 동안 후다닥 치우고 돌아오자고 마음을 단단히 별렀다.
엄마는 뭐가 그리 못 미더웠는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방 한가운데 서서 한 발자국도 꿈쩍하지 않았다.
먼지가 날려 건강에 안 좋으니 거실에 앉아 제발 쉬시라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엄마는 귀를 꽉 닫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좁고 분주한 방의 정 한가운데서 엄마는 고집스러운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새롭게 방의 구조따위를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물건들의 제 자리를 그 방 안에서 찾아주고 먼지를 닦아내는 일일뿐이었다. 환경적인 변화가 전혀 없는 단순한 정리와 청소일 뿐인데도 쓰레기 한 조각 치워나가는 것에도 엄마는 민감해했다.
화가 북받쳐 올랐다. 이렇게나 마음을 많이 양보하고 미움 따위 저기 저 멀리 숨겨버리고 내민 손이었다.
자식들의 큰 결심을 이렇게나 몰라주나 싶은 마음에 애석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악다구니로 바뀌는 엄마의 잔소리에, 저렇게 몸이 깡말라도 엄마 안에서 솟구치는 아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는 걸 느꼈다.
엄마는 그 긴 세월을 먹었지만 전혀 유(柔)해짐이 없었다. 오히려 독기가 바짝 오른 고양이처럼 날카로웠다.
아픈 사람에 대한 나의 몰이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엄마 모습은 꾸욱 꾹 밀어 넣어둔 분노를 화산처럼 폭발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모질고 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평생을 왜 그러는 거냐고. 평생을 이기적이었으면서 엄마는 어떻게 여전히 그럴 수가 있냐고.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와서 엄마를 위해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느냐고 물었다. 지랄발광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소리치지 않으면 터져버릴 몸이었다.
이 관계의 허무함이 지긋지긋했다.
늘 큰 소리 없이 순응하며 자라왔다. 맞추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말해봤자 소용없었던 경험들이 쌓여 만든 울분이었다.
참을 수 없는 순간을 생애 처음으로 격렬하게 토해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버텨온 마음의 무지막지한 중력감에 내리 울었다.
마음이 다투어대는 시끄러운 여러 날이 지나가고, 툭하면 터지곤 했던 눈물이 진정될 무렵, 나는 결심했다.
끝날 때까지 평행선일 수밖에 없을 엄마와 나의 관계를 인정하고, 더 나아질 거라는 일말의 희망도, 해피엔딩 따위의 긍정의 상상도 이제 그만 내려놓기로.
남이 아닌 남과 같은 사이에서 때때로 찾아올 감정의 진통에 괴로운 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부모를 용서했습니다'라는 간단한 말로, 저 심연에서 여전히 들끓는 나의 화와 슬픔을 회피하지 않겠다.
내면아이가 괴로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용서가 생각보다 쉽지도 않고 쿨 할 수도 없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참 자아가 하는 소리를 외면하고 '슬퍼하는 일'의 과정을 온전한 과정으로써 지나가지 않는다면, 상처받은 내면아이로 인한 고통은 계절마다 찾아오는 태풍과 쓰나미처럼, 마음을 부수고 재건해야 하는 일을 도돌이표처럼 겪는 일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과정은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굽이쳐서 일어나거나 둥근 형태로 일어나기도 하고, 소용돌이의 형태가 되기도 하다.
우리가 자기 이야기, 즉 살면서 겪은 특별한 에피소드를 완성하고 통합시킬 때마다
우리는 자유로워지면서 더욱 새롭고, 크고, 진실하고, 정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신에게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 中
다섯 장의 짧은 자서전
나는 길을 따라 걷네.
길가에 깊은 구멍이 있네.
나는 거기 빠지네.
나는 당황하고 무력하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네.
나아갈 길을 찾으려면 평생이 걸리네.
나는 같은 길을 따라 걷네.
길가에 깊은 구멍이 있네.
나는 못 본 척하네.
나는 다시 거기 빠지네.
나는 내가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네.
하지만 그것도 내 잘못은 아니네.
빠져나가려면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리네.
나는 같은 길을 따라 걷네.
길가에 깊은 구멍이 있네.
나는 그곳을 보네.
나는 또 거기에 빠지네..... 그것은 습관.
나의 눈은 열려 있고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네.
그것은 나의 잘못이지.
나는 얼른 거기서 빠져나오네.
나는 같은 길을 따라 걷네.
길가에 깊은 구멍이 있네.
나는 그곳을 돌아서 지나가네.
나는 다른 길을 따라 걷네.
나의 내면아이가 해방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들에 마음의 응원을 담아, 미국의 영화배우 포티아 넬슨의 시를 읽는다.
나와 같은 '우리'의 방황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깊은 구멍에서 헤어나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