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만나고 귀가하는 전철 안에서의 일이었다.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다.
열차 칸 중간쯤의 좌석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바로 앞에 앉은 어른의 모습에 눈이 번쩍 뜨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점퍼를 입은 어른이 마치 아빠 같았다. 우연이래도 이렇게 우연일 수 없는 일이었기에 과연 아빠가 맞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모자를 눌러쓰신 상태였기에 확신할 수가 없었기에 얼굴을 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가려진 얼굴로 아빠인지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다. 분위기로 봐서는 딱 아빠 같았는데...
친구가 옆에서 하는 이야기가 귀에서 멀어져갔다. 윙윙대는 소음일 뿐이었다.
이미 내 정신은 앞에 앉은 어르신에게 고정이 되어 있었고, 아빠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데 급급했다.
모자 하나 썼다고 아빠인지를 못 알아보냐고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아빠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경기도에서 비 소식이 있는 오늘, 아빠가 서울의 한복판으로 우산을 가지고 외출을 굳이 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거니와 만약 아빠였다면 아빠 역시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아빠 같았다. 구릿빛 피부와 얼굴 한 두군데에 피어난 검버섯 자국, 그리고 마른 몸...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했다. 심장이 급히 뛰기 시작했다.
다른 자리로 옮겨가고 싶었지만, 혹시나 아빠일까 확실하게 확인하지 못하고는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왠지 앞자리의 그 어른도 다리를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엉덩이도 들썩거리시는 게 내 눈엔 불안해 보였다.
붐비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딸이 많이 불편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들에게 들릴 것처럼 쿵쾅대는 심장박동에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두 정거장을 지나고, 어르신은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섰다.
얼굴을 보지 못했다.
왠지 그 어르신이 성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것만 같아 덜컥 겁이 났다.
아빠한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아빠가 지금 어디에 계신 건지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왠지 모를 불안 증상을 보이는 나를 친구는 걱정했다.
내가 내릴 환승 정거장이 되었고,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내리자마자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어디야? " , "집에 있지."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아빠랑 똑같은 사람을 봤다고, 내 심장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일부러 경쾌하게 통화했다.
별일이 다 있다는 듯... 아빠랑 정말 똑같아서 신기했다는 둥... 이런저런 안부까지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심장박동은 여전히 온몸을 울려대고 있었다.
실은 그제도 있었던 일이었다.
동네의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통창 바로 옆으로 휙 지나가는 어른이 보였다.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은 그 어른의 옆얼굴이 마치 아빠 같아 순간 숨이 멈춰졌다.
딱 그만한 키에 그만한 몸집에.
아빠가 우리 동네에 연락 없이 날 보러 오신 걸까? 미처 연락 안 하고 그냥 돌아가시는 걸까 그런 생각이 순간 들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 왜 그런 생각의 흐름을 겪는 걸까.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또다시 전철 안에서의 그 이상한 불안을 경험한 것이었다.
아빠의 도플갱어가 있다면 바로 그 어르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후 나는 길을 걷다가 또 내 앞을 지나가는 '아빠의 도플갱어'를 보았다.
뒷모습이었지만 딱 아빠였다.
자꾸 아빠 같은 사람이 보이는 일이 계속되니 내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단순히 아빠의 도플갱어 같은 누군가를 마주친, 농담거리 에피소드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통의 집이라면 당연, 깔깔 웃으면서 흘려버리고 말 일들이었을 텐데...
하지만 난 이 세 번의 일에서 숨이 턱 막힐 만큼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몰려오는 불안으로 불편했던 내 마음을 다시 떠올려본다는 것만으로도 쇳덩이를 가슴에 얹는 것 같다.
엄마와 더불어 아빠에 대한 불안의 감정들이 왜 이토록 커져 버렸는지...
아빠란 사람의 속속들이를 제대로 알기 전, 아빠를 좋아라했던 나로 돌아갈 수가 없다.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해되지 않는 이 설명되지 못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다.
착란이 온 건가? 정말 아빠가 아니었을까, 아빠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를 의심할 만큼 나의 불안이 저 멀리 마구 치닫고 있다.
화가 난다. 아빠와 딸의 우연한 만남이 '급격한 반가움'이 아니라 '어색한 불편함'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나의 불안을 인정하기가 싫다.
이렇게 흘러버린 관계와 감정의 골이 안타까우면서도 원망스럽다. 이 모든 것을 과연 누구를 탓하며 흘려보낼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불안이 두렵다. 다시 침잠해버릴까 봐서...
밝은 데 있고 싶다.
무엇이 되었든 사람은 자기를 구하는 방법을 알아가야 한다.
삶에는 반드시 스스로를 구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게속, 찾아오기 때문이다.
_ 정지우 작가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