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진 않아도 이해와 용서로 가는 길,그게 정답인가요

끝내 행복해질겁니다.

by HeySu

어느 분의 SNS에서 한 책을 알게 되었다.


<병명은 가족>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만나왔던 환자들의 질환 사례와 그들의 다양한 가족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병, 알코올중독, 망상장애 등, 책 제목처럼 그들의 병의 원인이 가족에서 기원했음을, 그들의 공통된 병명은 바로 “가족”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인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때때로 정신질환을 낫게 해 주는 둥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신질환을 촉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저자의 말처럼, 가족으로부터 받은 신체적, 정서적 불행은 안타깝게도 쉬이 대물림되기도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겠다. 원치 않아도 은연중에 내 자녀에게 그 대물림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유년기의 기억이 유령처럼 평생 ‘불안과 자조’의 모습으로 내 곁에서 떠돈다고 생각하면, 털고 털어도 다시 들러붙고 내려앉는, 지긋지긋한 먼지 같은 그 흔적들을 온몸을 떨어 제거하고 싶다.


글을 쓰며 유년기의 아팠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내게 고통을 마주하라 주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나의 이야기를 굳이 글로 드러내기를 결심하고 이렇게 쓰게 된 이유는, 내면 깊숙이 가라앉은 상처는 ‘굳이’ 마주해야만 보이는 것이고, 내 감정들을 자꾸 세상과 만나게 해야 유령 같은 이 불안들에 타자로써 정면에서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나만의 문제이자 불행이었다고 생각했던 어렸던 마음은, ‘나이 듦’이라는 선물을 받으면서 타인의 불행과 아픈 마음조차 ‘같이’ 떠안을 수 있는 마음으로 자라고 있다. 부모로부터 비롯된 유년기의 아픔을 겪으며 성장한 ‘어른이’들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화들짝 놀라며 깨닫는다.

같은 마음, 같은 울음이 이렇게나 많이 존재한다는 것에 마음이 진하게 아팠다.

그리고 <병명은 가족>이란 책의 환자들처럼 실체화된 병으로 자신을 옭아매지 않고, 유년기의 그 폭풍우에서 정신줄 똑바로 부여잡고 정말 “잘 크고 잘 살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때때로 무너져버릴 때도 있지만, 내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강한 내면의 도구가 우리 안에 분명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의 엄마로부터 최대한 나쁜 쪽으로는 눈에 띄지 않으려 했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화를 낼 때는 도망치고 싶었다. 빨리 그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지금도 어떤 불안 상황에 처할 때마다 도망치고 외면하고픈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이렇게 태어난 삶으로부터 도망쳐 사라져버리고싶다는 생각이 여전히가끔 들기도 한다.


작년 가을, 엄마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다.

징글징글한 감정 소모가 싫어 이 핑계 저 핑계로 어버이날, 생신날, 명절 외엔 별다른 왕래 없이 지내고 있던 때였다.

많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아빠 말에 달려갔을 때 엄마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뼈만 남은 모습에 왈칵 그냥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미움과 원망으로 속 끓이기는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나이 들고 아픈 이 노인을 내 마음 따위 앞세우지 말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용서하자는 마음으로 나를 달래고 또 달랬다. 미움 속에서도 엄마에 대한 연민,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또 효녀로 빙의해야 한다고 절로 반응 한건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폭풍같이 울고, 그날 이후 몇 달간 병원 일정을 따라다니며 신경을 썼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동생에게만 의지했고 동생만 찾았다.

엄마는 본인이 낳은 딸 외에는 전보다 더 곁을 내주지 않고 믿지도 않았다. 나와는 더더욱 남 같아져만 갔고, 평생 엄마의 가스라이팅으로 힘들어 왔던 동생은, 귀를 닫은채 본인주장 일색인 엄마의 온 감정을 받아내며 점점 더 힘들어했다.

그래도 자식인지라 엄마를 위해 이것저것 해보겠다는 나의 노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당했다.

엄마는 엄마 말만 했고, 여전히 지독했고, 과거보다 더 고집스럽게 본인만 알았다.

그렇게 몇 달간 더 치열하게 마음이 다치고 다투었다.

결국, 엄마와 난 어떤 소통도 없는 진짜 ‘남’ 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



심리치료 전문가 다미 샤르프의 말처럼 감정과 느낌에는 언제나 뿌리가 있다.

굵은 뿌리의 감정, 과거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감춰두었던 말을 드러내고, 새로운 관계경험을 많이 해야만 한다. 내 마음이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부모 자식 사이는 이래야 한다’는 족쇄에서 벗어나, 나를 ‘타인’으로 두고 부모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나의 행복을 원 없이 갈구해보고 싶다.

친절하지 않았던 부모가 늙어간다고 해서, 힘없는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절대당위의 마음 따위는 갖지 않기로 했다. 진정한 용서가 아닐 것임을 알기에, 그 섣부른 용서가 풀지못할 또 다른 족쇄가 되어 버릴 것을 알기에 신중하기로 했다. 불쾌하고 응어리가 남는 용서라면, 나를 위해서 까짓것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부모와 반드시 좋은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나의 상처와 감정들을 또 양보함으로써 더 이상 상처를 중첩하지 말자.

외면하지는 않으나 사랑을 주지도, 원하지도 않는 이 관계로 그저 그렇게 놔두는 것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지킬 도리만 지킬 뿐이다.

남들 뭐라건, 여전하게 변함없이 상처 주는 엄마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또 희망하고, 애써 좋은 기억이랍시고 끄집어낸 한두 가지로 전체의 기억을 좋게 포장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끊임없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부모에게 실망하고 원망하는 일이 지속될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때의 그,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무력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나의 선택으로 얼마든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내 마음은 나의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더 이상 불행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한없는 지지를 보내주고, 언제나 믿어 주고 끊임없이 사랑을 줄 것이다.


끝내 행복할 것이다.


용서나 화해 따위 없이도.

keyword
이전 20화아빠의 도플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