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거칠었던 날

by HeySu


스물예닐곱의 나는 야근하는 날이 많았다.

날씨가 쌀쌀했던 그날도, 얼굴 근육이 모두 축 처진 표정 없는 모양새로 늦은 귀가를 했다. 거실의 티비에서는 밤 열 시 드라마가 한창이었다. 소파에서 조용히 TV시청 중인 엄마 아빠에게 나의 귀가를 알리며 건조한 인사를 건넸다. '휴우'하는 한숨을 내쉬며 내 방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큰 언니가 드러누워 있었다. 내 유일한 공간이 침범당한 것 같아 짜증이 솟구쳤다.


"내 침대에서 뭐 하는 거야!"

피로감에 푹 쩔은 목소리로 온 짜증을 내질렀다. 반응 없는 언니에게 화가 나 가까이 다가갔다. 하나 둘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 팔목에는 수건이 동여매져 있었고, 내 침구 위에는 이미 검어지고 칙칙하게 변한 핏자국들이 보였다. 덜컥하고 놀란 마음을 큰 숨 한 번 들이쉬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를 생각했다.

언니가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 올렸다. 기운 없이 누워있는 언니가 보였다. 팔뚝에 둘러져 있는 수건을 들춰보니 피가 엉겨 붙은 자상이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피부 조직이 몇 센티의 틈을 활짝 벌리고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단순히 베인 게 아니라 당장 급히 병원으로 가서 꿰매야 할 상처라는 것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에 거실소파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드라마 따위를 보고 있는 엄마아빠를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을 경이었다. 어찌 그리 냉혈한일 수 있을까.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정말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당황스러웠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힘없는 언니를 깨워 옷을 입히고 부축한 채 집을 나섰다. 택시를 불러 잡고 가까운 응급의료센터로 향했다.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내팽개치듯 방에 방치되어 있던 언니의 사정도 안쓰러웠다. 이유불문 엄마 아빠는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언니는 엄마아빠와의 싸움 끝에 유리잔을 깨고 자신의 팔을 그었다. 위험한 급소 부분은 아니었지만 깊은 자상을 입은 상태였다. 응급센터의 길고 긴 대기 시간을 견디고 견뎌야하는 그 시간, 이미 새벽 1시를 넘어갔다. 우리 순서는 빨리 오지 않았다. 벌어진 상처의 오염이 염려되어 속이 타 들어갔다.

깊은 밤 이곳에 이런 꼬락서니라니...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솟구쳤다. 언니와 나는 의사가 우리를 호명할 때까지, 각자의 마음을 숨기고 억누르며 새벽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내 마음 건사하기가 더 급했고 버거웠던 어린 나였다. 그래서 언니의 마음까지 깊이 헤아릴 깜냥이 되지 못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일이 언니에게도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헤아릴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나보다 언니였을 것이란 걸, 언니를 좀 더 보듬어줄걸 그랬다는 생각을 한건,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난 후였다.

그 당시에는 내 마음 돌보기에 너무 급급했다. 다른 것,다른 사람의 사정 따위 돌아볼 심적인 여유가 전무했던 날들이었다.

아주 거칠고 차갑기만 했던 젊음이었다. 표정 없고 싸늘한 바람이 많이 불었던 20대, 나는 많이 외로웠고, 괴로웠고 미칠 것 같았다.




그날의 구체적인 싸움의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왔으니까.

어릴 적부터 유순한 성격은 아니었던 언니와, 강하고 강한 엄마 아빠의 성격은 물과 불처럼 상극이었다. 만나면 부딪치고 사달이 났다. 쌓여온 갈등이 폭발하는 일이 잦아지던 시기였다.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셋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어느 한편이 잘했다 잘못했다 분명히 할 수 없는 '편들 수 없는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때론 언니가 제발 엄마 아빠 성질 좀 긁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주 미성숙한 인간이 바로 우리 큰언니다. 남 보다도 친근하지 못한 사이로,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이상한 관계로 지금도 그렇게 우린 각자 살아가고 있다.

언니와 친했던 적도 물론 있었다. 언니에게 진심을 다해 정을 쏟았던 날들도 있었다. 거듭되는 실망감과 절망감에 나는 언니라는 사람을 지금은 내려놓았다. 때론 내가 너무 냉정한 것인가 되돌아보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나는 마음을 다했었다고 생각하기에 후회나 죄책감은 내 몫이 아니다.



응급의료센터의 의사가 졸음 가득한 눈으로 내려왔다. 언니의 상처를 봉합할 차례가 왔다. 처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꿰매다 꾸벅대고 꿰매다 눈을 감는 의사의 모습이 불안했다. 밤새도록 돌아가는 의료센터의 현황을 이해하고 의사들의 극도의 피로함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환자 앞에서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보면서도 한 마디 쌀쌀하게 내뱉지 못하는 '을'같은 내 입장이 억울했었다. 봉합처치를 마친 후 응급의료센터 밖으로 나왔다. 언니와 난 둘 다 말이 없었다.

입김이 나는 새벽이었다. 마음이 많이 시렸다.



컴컴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안은 적막했고 그 새벽, 굳이 엄마아빠를 깨워 악다구니를 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출근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어서 씻고 잠이 들어야 했다. 그래야 또 시작되는 '직장에서의 하루'를 버틸 테니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않고 넘어가선 안 될이었다. 퇴근하고 엄마아빠에게 아픈 마음을 내질렀다. 상처 입었노라고. 어떻게 그렇게 냉혈한일 수 있느냐고, 당장 봉합해야 하는 상처였노라고.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어찌 못하고 텔레비전을 볼 수가 있냐고...

쥐꼬리 월급 받는 사회 초년생인 내가 병원비를 결제했노라고. 엄마아빠랑 싸워서 이리 만든 거니 엄마아빠가 내게 병원비 갚으시라고.




핵심은 돈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일에 언니의 잘못 만이 아니라 엄마아빠의 탓도 있었노라고 명명백백 알게 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 그 병원비를 받아내지 못했다. 그날의 일들을 엄마아빠가 과연 기억하고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다. 나는 가끔 그날의 새벽 공기와 시리고 거칠었던 내 마음이 떠오르곤 한다. 내 몸 사방에서 거대한 압력으로 눌러대는 것만 같았던 청춘이었다.

푸르지 못했던 내 청춘이 아직도 내 안에 살아있다. 바람이 이렇게 많이 부는 날이면 시린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그렇게 아픈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나의 큰 언니는 '그러한 날'들을 또 싸워대고 번복하면서 그 이후로 스스로를 더 부숴만 갔다.

다섯 살 터울 동생인 내 손을 꼭 잡고 데리고 다녔던 다정했던 초등 꼬맹이 큰 언니,

그녀는 지금, 날카롭고 불안한 마음의 병을 앓고 사는 '조각나버린 사람'이 되어 있다.






나는
지나간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 받고 싶다.

이것이
내가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다.

이미 오래전에 떠나가 버린
지난 어린 시절의 아이,

그 아이가 지금도
당신과 내 안에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당신과 나의 마음의 문 뒤에 서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무슨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 로버트 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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