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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Apr 27. 2023

천천히 좀 가면 뭐 어때


며칠 만에 한강변에 산책을 나왔다. 

오늘도 그냥 걸을까 하다가 따릉이 자전거를 빌렸다. 

한 시간에 천 원, 두 시간에 이천 원. 골라골라 하다가 두 시간을 선택해 결제했다. 

해가 질 무렵 타기 시작해서 해가 지고 돌아오는 코스의 자전거 여정은 수개월만이라 반가웠다. 


어제는 공기가 매우 차서 경량패딩을 꺼내 입을 만큼 겨울이 다시 왔나 싶더니, 오늘은 저녁 바람인데도 기분 좋게 선선했다. 

키에 맞게 안장 높이를 조절하고 달려본다. 좋아하는 음악리스트를 재생하고서는 걸어서는 가지 못했던 곳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출산 이후 소실되기 시작한 머리카락들 덕분에 이마라인이 훤해져서 자전거를 타면 분명 좀 흉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뭐 어떤가! 누가 못 보게 더 쌩쌩 지나가버리면 되지.



한 주의 중간에 머무른 날인데도 다른 날보다 사람이 많았다. 

레깅스를 입고 러닝 하는 사람들, 한강변을 걸어서 퇴근하는 사람들, 나란히 걷기 운동 중인 부부들,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저녁을 오늘의 강바람처럼 선선하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더 기분이 좋았다. 

내 눈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득 보여서 정말이지 좋았다. 



한강변은 따사로운 낮의 모습도 좋지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밤의 모습이 몽환적이다. 

달의 빛과 별의 빛에서 흘러나오는 몽글몽글해지는 감정도 그러하지만, 강의 양쪽에 펼쳐진 도시 건물들의 조명이 쏘아내는, 취하는 듯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때론 왠지 모를 설렘으로 고조되는 기분이었다가, 때론 또 한없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유독 어두운 트랙을 따라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빨갛게, 파랗게 제 몸을 드러내며 각자의 말을 하는 그것들이 다정했다.

천천히 가라고 얘기도 해주고, 안전하게 여기 횡단보도로 건너라 말도 해주고, 속도를 줄이라는 말도 해준다. 

자전거를 타며 그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다 보면 꼭 우리 인생에 건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쁘고 호들갑스럽게 시작되었을 아침, 일로 정신없이 바빴을 낮의 시간, 일과를 끝내고 한숨 내려놓는 저녁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반짝 불을 켜고선 "조급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남들의 속도보다  지금 내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부단한 노력을 폄하하고는 있지는 않은지, 다른 이의 인생을 부러워하며 허겁지겁 쫒기 바쁜 삶을 사느라 지쳐있는 것은 아닌지, 이룬 것 하나 없는 듯한 좌절감에 불안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그대는 제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를 걱정하며 물어주는 것 같았다. 


그래, 조금 천천히 가면 어떠한가. 지금은 느리지만 우리는 멈춰있는 게 아니다. 

멈춰있지 않는 한, 목표한 곳에 반드시 우리는 다다르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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