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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May 02. 2023

다른 이의 삶이 더 행복해 보인다면.







단지 행복해지려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은 항상 어려운 길이다.
왜냐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_몽테스키외






종종 다른 이의 삶을 질투하곤 한다. 

누군가에겐 탄생부터 이미 주어진 것들에 대해, 누군가에겐 쉬이 선물된 것 같은 행운에 대해, 누군가에겐 웃음보따리였을 유년기의 추억에 대해, 누군가에겐 평탄하게 채워졌을 '삶의 준비물'이 미치도록 부러운 때도 있었다. 

부지런히 애쓰는데도 그 '애'가 얼마나 부족했던 건지 드라마틱한 전개 하나 찾아오지 않는 삶이 지루하고 지겨워지는 날도 있었다. 

딱 저만큼만 가보자 하고 종종 거리며 쫓아가다 보면, 딱 저만큼에 그어놓았던 선은 어느새 또 저기 저만큼 약 올리듯 멀어져 가 있곤 했다.

끝날 곳이 어디인가, 삶을 만족하는데 결승선은 없는 것인가. 



움켜쥔 것이 적은 사람의 마음이 가진 것이 얼마인지 정확히 헤아리지도 못하는 사람의 마음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을까? 

새벽과 한낮을 내리 달려 주워 온 폐지의 한 묶음이 쌓여 모인 어느 노인의 몇 십만 원 기부금이  억대 자산가의 몇 천만 원 기부금의 가치와 결코 같지 아니하듯,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앉은 '행복'이라는 형체 없는 그 무엇은 정해진 어떠한 기준점이 없어 감히 크기를 가늠할 수 어렵다.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고, 한 주를 보내고, 한 달을 흘러 일 년이 가기를 여러 번. 

고개 돌려 지나온 '하루'들을 다시 보고 있자면 분명 나는 과거의 내가 바라왔던 것만큼의 성장과 '나아짐'의 자리에 와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난 여전히 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가끔은 이런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지금의 행복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서 잃어버린 감정 혹은 잊은 감정이 된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에, 나는 물론 함께 노력하며 살아가는 나의 동반자에게 미안해지고 마는 것이다. 



다른 이의 삶이 여전히 더 행복해 보여 눈초리, 마음초리가 치켜 올라가는 마음일 때 내가 떠올리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다들 읽어보았을 독일의 옛이야기 <어부와 아내>이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욕심을 준엄하게 경고하는 이 이야기는 성숙하지 못한 나를 꾸짖는 회초리가 되어준다. 다른 이의 삶을 선망하고 질투하는 내 마음이 지칠 줄 모를 때, 이야기 속 어부와 아내가 맞이하는 욕망의 대가와 결말은 '자분지족'하는 마음태세를 얼른 차려입게 만든다.


나의 동반자는 나로부터 사과를 종종 받는다.

동분서주하며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고 또 만드는 중인 그에게 늘 더더 좋은 것을 원하고 더더 높은 수준에 이르고 싶어 하는, '욕심이 끝도 없는 어리석은 동화 속 아내'가 바로 내 모습인 것 같아서, 나는 남편에게 '자수하고 광명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어부와 아내> 이야기를 문득 떠올리게 된 어느 날의 우연이 감사할 뿐이다. 간간이 정신 차릴 수 있어서.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이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남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은 항상 어렵다는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말처럼,

이미 쥔 행복마저 잊히지 않도록, 우리, 조바심 나는 마음을 조금만 진정시켜 보면 어떨까.


당장 몸져누운 이 하나 없고, 웃음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지금 이 시간의 행복만으로 충만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






<어부와 아내>


가난한 한 어부가 어느 날, 넙치 한 마리를 낚는다. 그런데 넙치는 ‘마법에 걸린 왕자’였다. 

어부는 넙치를 풀어 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부의 아내는 그 대가로 끝없는 욕망을 드러낸다. 


처음엔 아담한 집 한 채를 원한다. 넙치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다. 온갖 꽃과 과일나무가 자라는 뜰에 좋은 집을 얻은 아내는 기뻐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아내는 넙치에게 성을 달라고 요구하고, 이번에도 넙치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다. 


부(富)를 거머쥐자, 아내는 이제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왕이 되고, 황제가 되고, 결국은 세상에 하나뿐인 교황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부와 명예를 다 얻고도 자족하지 못하는 어부의 아내는 급기야 신의 자리까지 넘본다. 


지금껏 은인의 소원을 모두 들어준 넙치는 이번에도 아내의 소원을 들어줄까. 


어부가 소원을 말하면 언제나 “가 보세요. 그렇게 돼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던 넙치는 이번에는 크게 숨을 내쉬며 “가 보세요.”라는 말만 남긴다. 

그리고... 어부와 아내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처음의 그 낡고 허름한 오두막에서 처음처럼 가난하게 살게 되는 처절한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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