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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을 했다고 한다

피싱인줄

by 쏘니

휴직 중, 나는 캘리그라피 수업을 들었다. 시를 쓰고 글씨를 쓰는 일은 서로를 닮아 있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나누는 점심과 수다는 두 달 남짓한 시간을 반짝이게 했다.
복직 후, 우연히 시민 공모전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쓴 시 중 하나를 냈는데, 입선 소식이 문자를 타고 날아왔다. 처음에는 피싱 같았다. 확인해보니 진짜였다. 추석 연휴, 마로니에 공원에서 전시도 열린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 이렇게 현실로 오는 순간, 마음은 한참을 들뜨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책모임에 나갔다. 선선한 가을 햇살 아래,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모임 후엔 비빔밥을 함께 만들었다. 나물과 계란, 고추장과 참기름, 큰 볼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는 그 어떤 호화로운 식사보다 풍요롭고 따뜻했다. 이런 순간, 나는 삶이 왜 버틸 만한지 이해하게 된다.
회사 생활은 여전히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 부서가 달라 새로 익혀야 할 지식이 많고,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느라 머리가 분주하다. ‘적당히 하자’고 마음먹지만, 성격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과 현실 속 적당함 사이,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책모임에서 만난 한 동료는 나와 비슷한 마음을 말했다. 복직 후 우울감이 찾아왔고, 좋아하던 모임과 도서관에도 쉽게 나설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모임과 작은 즐거움은 마음에 빛을 남겼다. 현실은 무겁지만, 작은 행복이 삶을 버티게 한다.
10월이 바쁘다는 소식이 현실을 상기시키지만, 나는 깨닫는다. 삶은 즐거움과 부담, 설렘과 긴장이 서로 맞물려 오르내리는 여행이라는 것을. 오늘의 작은 행복이 내일을 견디게 하고, 잠깐의 설렘이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 적당히 하되, 소홀하지 않게. 열심히 하되, 나를 잃지 않게. 이런 균형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숨을 고른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있을까. 오늘 같은 즐거움이 다시 올까, 아니면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일일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삶이 재미있는 걸까. 늘 어렵다.


입선한 시는 바로 이것!


언제나 괜찮아

100일이 지나면 괜찮대
돌이 지나면 괜찮대
말하기 시작하면 괜찮대
학교 들어가면 괜찮대

아니,
지나면 또 다른 시련이,
지나면 또 다른 고난이,
지나면 또 다른 힘듦이,
지나면 또 다른 고민이

아니,
그래도 행복의 씨앗이,
그래도 웃음의 조각이,
그래도 함께의 기쁨이,
그러니 언제나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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