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1년
지문과 함께하는 나날들(feat. 사물 글쓰기 에세이)
오늘도 나는 손가락 지문에 파뭍혀 있다. 낮이고 밤이고 가리질 않는다. 잠깐 잔 것 같은데 다시 손가락이 날 가만 두지 않는다. 뭘 그렇게 손으로 쳐서 눈으로 볼 게 많은지 한시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깜깜한 밤에도 나를 계속 찾는다. '이젠 좀 자야지!' 내가 소리쳐도 눈 앞에 그녀는 말똥말똥 졸리지도 않은지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나를 쳐다본다.
관심사도 여러가지이다. 글쓰기, 그림책, 육아, 주식, 코인, 서울 아파트 매매 등 멈추질 않는다. 그리고 맛있는 건 왜 그렇게 보는지 먹을 거에 관심 없는 나도 눈이 번쩍 뜨이는 음식이 많다. 가끔 나를 뚫어지게 그녀가 볼 때가 있는데 어김없이 밥상엔 나와 함께 본 음식이 자리한다.
글쓰기 수업 이후 나를 찾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예전엔 슥 스윽 손가락을 밑으로 옆으로 넘기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젠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뭐해요?" 옆에서 그녀의 남편이 물으면, "엉 브런치 글~" 하고는 다시 손가락이 나를 찾는다. 노트북보다 쓰기 더 쉽다며 나를 계속 찾는다.
어제는 왠일인지 나를 찾는 시간이 줄었다. 주말은 아이와 계속 같이 있으니 나보다는 TV를 보는 거 같다. 나도 좋은 영상을 많이 아는데 아이는 TV를 좋아한다. 소리를 들어보니 포켓몬스터다. 그녀도 노래를 아는지 함께 부른다. 그리고는 나를 또 잡아 들었다. 아이가 책을 사달라는가 보다. 포켓몬스터를 쿠팡에 검색하더니 포켓몬스터 도감을 또 검색한다. "와...종류가 엄청 많네. 자기야 이거봐바." 그녀는 한참을 보며 신랑과 얘기 했다. 아이도 조금 보더니 좋아좋아 하며 블록을 갖고 한참 논다. 포켓몬스터 종류를 소개한 책이라고 써있는데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미스터리한 소설이 좋던데. 하지만 아이가 도서관에서 한참을 보고 빌려와서도 계속 봤던 책이라 이번에 사줄 건가 보다.
메일도 쇼핑도 검색도 기사도 모두 그녀는 나를 통해 본다. 손바닥만한 나를 하루에 6시간은 보나 보다. 길게도 보고 짧게도 보고 나를 통해 세상을 본다. 지난 번에는 길을 가다가도 한참 보고 있어 그녀의 신랑이 그녀를 나무라기도 했다. 평소에도 한참 나를 보고 있다가 그가 그녀를 부르는데 못듣는 경우도 있다. 주로 웹툰을 보거나 영상을 볼 때가 그렇다. 하루에 웹툰을 몰아볼 때는 내가 못이겨 화면을 꺼버릴 때도 있다. 그제서야 밥을 주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다. 10분쯤 지나면 다시 그녀에게 웹툰을 보여줘야 한다.
밤에 그녀가 잘 때가 유일한 휴식기이다. 그제서야 나도 전기에 의존해서 따뜻하게 잠을 청한다. 그녀와 만난지는 1년 남짓. 예전에 함께 하던 친구는 바다 속에 들어간 뒤 사진촬영 기능을 상실했다고 한다. 그녀가 살리려고 노력 했지만 결국 안되어 집에서 가끔 노래를 틀어주곤 한다. 그렇게 만난 1년 동안 다양한 세상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함께 울고 웃었다. 내일은 또 어떤 세상으로 그녀와 만나게 될까. 요새 한참 블라인드와 사람인 어플을 찾아보던데. 모쪼록 그녀가 만나는 세상이 나를 통해 좋은 세상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