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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Feb 17. 2020

생산량 만 단위로 계산하지 못하면 양조장 하지 마라

가양주와 상업 양조는 단위부터 다르다

모 외식업체의 게장 사태를 보면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떠나 다들 F&B사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자성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술을읽다"라는 술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며 33명 대상 오픈 베타 서비스로 본전도 못 뽑는 QC를 테스트 겸 진행한 이유도 수십 종의 술을 큐레이션해서 술다방에서 판매하고 서빙해 보면서 얘기치 못한 다양한 상황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유리병인데다 모양와 재질, 용량이 일정치 않은 술을 포장하여 배송하는 과정에서 분명 많은 문제가 발생하리라 예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앞으로 컨설팅하고 제품 기획하는 과정에서 더욱 인텐시브한 패키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뽁뽁이를 안팎으로 둘러도 파손에 대한 위험을 피해갈 순 없다. 무엇이 깨지든 무조건 새박스를 보내드려야 하고. 이러나 저러나 깨진 술병을 보는 건 참으로 맴찢 ㅠ


어제 밀양에 출장갔다 본가 계시는 부모님도 뵐 겸 대구에 들러 우연히 창업 초기 대표님을 만나 사업 얘기를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들어주는 반면 고나리질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타고난 컨설턴트 본능은 어쩔 수가 없어서 마지막에 HACCP이랑 제조공장 얘기가 나오자 현실을 얘기해 주는 게 더 성장할 수 있는(아니 사실 성장보다 망하지 않는! 망하지 않고 생존하는 게 초기 창업의 핵심임) 밑거름이라 생각되어 조금 쓴소리를 꺼냈습니다. 다행히 듣는 분께 도움이 되었는지 하루 지난 오늘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각설하고, 요지는 이렇습니다.


가정집 4인 식탁 차리는 거랑 가게 내고 외식업장 운영하는 것도 넘사벽이지만
F&B를 상품으로 개발해서 파는 것 역시 하늘과 땅 차이다.

업장에서 배민이나 요기요로 배달하는 거랑
음식을 제품으로 만들어 포장 및 배송 하는 건 차원이 아예 다른 얘기다.

제조공장이나 제조업 쉽게 건드리지 마라.
지금 잘 하고 있는 것도 날라간다.


돌이켜 보면 밀양에서도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해 드렸었네요.

제조해서 유통하는 건 절대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시제품이 신제품이 되는 건 안 일어날 수도 있는 얘기다.
시제품 개발한 게 모두 신제품 되는 건 아니다.




4인용 가정식>>>>>>>>>외식업>>>>>>>>>>>>>>>>>>>>>>>>>>>>>>>>>>>>>>>>외식프랜차이즈>>>>>>(은하계 삼천갑자동방석)>>>>>>>>>>>>>>>>>>>>>>>>>>>>>>>>>>>>>>>>>>>>>제조 및 유통



인데 전통주 하는 사람들은 이 단계 다 건너뛰고 “가양주=4인가정식>>>제조 및 유통”으로 생각해 버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4인 가정식에서 4라는 숫자가 1자리 숫자라면 제조 및 유통은 단위 자체가 만, 십만으로 바뀌죠. 소규모 주류제조 역시 월 최소 천 단위는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양주 좀 빚을 줄 안다고 양조장 막걸리 맛으로 까면 웃기겠어요, 안 웃기겠어요?


상업 양조는 시스템이지 ‘맛’이 아닙니다.


솔까, 님들이 저 한창 술 빚을 때 못 봐서 그렇지 가양주 배틀하면 제가 다 이길 자신있어요. 제 몸에 덕지덕지 붙은 효모 자체가 퀄이 좋아요 -_- 가양주 맨손으로 빚어본 사람들은 이게 뭔 말인지 아시죠? 아무튼 이딴 걸로도 이길 수 있는 게 가양주 수준의 양조입니다.


무튼 취미로 요리하는 거랑 이걸로 사업하는 거랑 같나요?



만드는 게 어려워요?
파는 게 어려워요?



제조하는 분들은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파는 게 백배만배 어렵습니다. 제조는 돈만 있으면 저를 비롯해 제조면허나 시설 쪽 전문가 몇명 붙고 설비 갖추면 웬만큼 다 되요. 근데 판매는 돈만 있다고 됩니까? 돈 아무리 때려 부어도 시장 출시 후 망하는 제품 수두룩해요. 그게 어디 제조가 잘못 되어선지 아십니까?


알면 알수록 겸손해지는 게 사업입니다.


요즘은 정보가 쉽게 오픈되는 사회라 빨리 흥하면 빨리 망하기도 쉽고 남들이 보기에 빨리 흥한 곳들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건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 하나의 좋은 물건을 만들려면 예술하셔야죠. 제품 팔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제조면허 받고 설비 갖추셨으면 MoQ(Minimum Order Quantity, 최소생산수량) 만 단위로 생각하고 계산하고 셈법에 넣으셔야죠. 그렇게 안 할 거면 그냥 공방 수준에서 체험 정도로 그치면 됩니다. 수백, 수천 단위 수량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요. 인터넷으로 팔면 더 많이, 더 쉽게 팔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반댑니다. 온라인 마케팅하고 포장, 배송까지 소화하고 나면 파손에 대한 리스크 뿐만 아니라 기업이미지,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란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식까지 하고 싶은 분들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 받으면 되고요. 개인사업하기엔 이 정도 수준이 딱 좋습니다. 제조공장을 만들어서 제품을 파시겠다면 만 단위로 생각해야 답이 나옵니다.


만 단위는 결코 배상면주가나 국순당 같은 이 바닥의 대기업(그러나 일반 산업군에서 보면 소기업)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정도 소기업은 월 백만 이상 단위입니다. 그래봐야 1병 1천원 1백만 병 잡으면 10억이에요. 1년이면 고작 120억입니다. 저는 국순당 수준의 공장 몇개씩 돌리는 중소기업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가족들 두셋 데리고 일하는 시골의 영세한 전통주 양조장을 기준으로 "만 단위"를 얘기하는 겁니다.


왜 이 기본적인 것들을 생각지도 못 하는 사람들이 "전통"과 "전통주"란 이름으로 시장생태계를 흐려놓을까요? 그것은 이러한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어느 집단에는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지만 제가 악화되지 않는 건 제가 선도 악도 아니고 다만 무색투명하게 팩폭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_-;;;


MoQ 10만 개를 달성해서 팔 자신이 없다면 제조업으로써 포지셔닝 하지말고 6차 산업 체험콘텐츠로 방향을 잡고 사람이 서비스해서 쌓을 수 있는 부가가치에 초점을 둬야 합니다.  혹은 매우 적은 양만을 제조해서 초고가로 팔 수 있는 마케팅을 하던지요. 그렇지만 두번째 방법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권하지도 않습니다. 제조자나 제조사가 샤넬이나 프라다 등 이미 명품으로 세계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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