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살다 보니 깨달은 게 있다. 아, 속았구나.
한때는 너무나 순수하고 단편적이게도 남편에게 속은 줄 알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왜 그때(연애할 때) 그런 척을 하며 나를 속였냐"라고 따지기도 했다. 나도 그랬던 것은 알지만, 그 말을 하진 않았다.
내 원망을 들으며 남편은 수긍되는 면이 없진 않지만, 대체로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너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나 보다)는 사랑했고,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라는 논리였다. 행동의 출처인 '마음'이 선하니, 행동은 무죄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사라진, 하지만 당시 내가 행했던 '내숭'이라던가, '상냥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 행동들'에 대해서도 죗값이 물리지 않으려면, 나도 한발 물러서긴 해야 했다. 그래서 이런 주제의 대화는 이제 어지간해서는 등장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속은 기분인데.
요즘 날씨가 선선해지니 주변에서 마라톤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마라톤'이라면,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아주 중요한 계기였기 때문에, 그 단어는 내 안에서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킨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부풀만큼 부푼 몸에 관절도 약해져서, '마라톤'은 욕심보다 욕망에 가깝다.
"여보, 나는 요즘 마라톤보다는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이 하고 싶더라."
이 말을 하면서도, 너무나 나다운 생각과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가능한(이라고 쓰고 싶지만 실상은 '늘') 의미를 찾고, 진지한 나.
"응, 그런데 빵빵 마라톤이란 것이 있대. 마라톤을 다 뛰고 나면 빵을 준대"
연애할 때 우리는 그랬다. 둘 중 하나가 플로깅을 얘기하면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같이 해봐요" 상대가 빵마라톤을 얘기하면 "그거 재미있는 이벤트예요. 같이 나가봐요" 그런데, 지금 나에게는 남편의 '빵빵' 소리에 고독과 실소가 뒤엉킨다. 논문양과 빵군의 결혼생활이라니, 웃어야지 어찌하겠나. 다시 물려? 그렇다고 네모끼리 결혼해서 재밌겠니?
나는 그때 배가 고팠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고민할 게 너무 많았다. 속이 시끄러워서도 그렇고, 밖이 시끄러워서도 그랬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니, 주로 입맛이 없거나 먹을 시간을 놓치곤 했다. 인생은 원래 쓴 거라며, 커피만 사발로 마셔대니 잠을 못 자서 또 입맛이 없고 그랬다. 그때 화성에서 나타난 남자가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밥이 우선이라고, 맛있는 밥 먹자며 밥 얘기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남편이다. (왜 나를 속였냐는 말은 이제 취소)
나는 "왜 이 남자를 만나면 먹게 될까"를 생각하곤 했지만, 내 배가 채워지는 포만감에 그만 결혼이란 것까지 했지 뭔가. 결혼하고 나서 보니, 이 남자는 그저 '먹는 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때 좀 더 깊이 생각해봤어야 했을까?
보통들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가진 이성에게 호감을 느낀다던데, 당시 내가 하도 배가 고파서 '먹는 즐거움'을 가진 청년이 그토록 내 짝으로 보였다는 FACT를 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또, 우리를 엮어준 '나의 허기' 다른 말로 '나의 결핍'도 인정한다. 결핍이라는 주재료에 호르몬이라는 양념이 더해져서 아주 근사하고 맛있는 ‘사랑’이라는 요리가 만들어졌으니, 나는 그걸로 허기를 잘도 채웠더랬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이 만들어낸 결혼식 입장 컷은 대략 이렇다.
우리가 아이를 둘 낳고 여태 살고 있다고 해서, 논문이 빵이 되거나 빵이 눈문으로 되는 일은 벌어지진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고, 내가 요리논문이 되는 일도 일어나진 않을 것 같다. 빵이 요리논문이 되는 사건? 이것은 거의 부활과 같은 수준이고.
그것을 요구한다면, 빵은 차라리 자신을 튀겨달라고 할게 분명하다. 논문이 되느니 차라리 고로케(croquette)가 되는 것을 선택할 남편인 것은 어느 차원에서는 다행이다. 왜냐하면 논문끼리 결혼했으면, 둘은 정말 수난과 죽음, 부활을 선택했을지도 모르니… 오 주여;
* 오늘의 감정 [고독]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