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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Mar 20. 2024

아이의 발가락이 휘었다.

오랜만에 아이와 마주 앉아서 아이의 발을 쳐다본 순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아닌데..  
내가 마지막으로 본 발가락은 곧았었는데..

 


둘째가 태어나고 정신없는 통에 첫째의 발톱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첫째가 혼자서 발톱을 잘 깎길래 스스로 하는 것만 믿고 들여다보지 못한 시간이 3년이었다. 둘째가 세돌 즈음되니, 이제 좀 한숨 돌리는 기분이 들어서, 나에게 온기가 느껴지던 어느 날에 첫째에게 "엄마가 발톱 깎아줄까?" 물었다. 아이도 엄마의 보살핌을 받을 게 좋은지 곁으로 쪼르륵 다가왔고, 나도 첫째와 시간을 갖는 게 좋았다. 그런데 왜 아이의 발가락이 휘어있는 걸까. 순간 지난 3년이 내게 차갑게 느껴졌다. 비록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음에도..


동네 정형외가에 가서 의견을 들어보니, 평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냥 볼 때는 발바닥이 평평하지 않은데, 발을 디딜 때 발바닥이 펴지는 '유연성 평발'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발이 펴지며 엄지발가락에 자극이 가서 휠 수 있는데, 발가락이 더 휘지 않게 도와줄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나는 평발이라는 말보다,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말에 더 속상했다.


아이가 크다 보니 이렇게 ‘자라며 나타나는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숨어있던 유전적 소인들이 아이에게 하나 둘 발현되기 시작하면, 너무 안타깝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데...


나는 아이의 발가락이 휘게 그냥 놔두고 싶지 않았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찾기 위해, 더 솔직히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아이를 도와줄 방법은 없다'는 이야기를 한번 더 들었다. 그곳에는 증상이 심각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왔을 의사는 '내게 느껴지길 다소 냉정하게' 딱 한 가지만을 강조했다. 15도! 발가락이 꺾인 정도가 15도 이하이면, 그냥 지켜보는 거라고. 휘는 것을 막아준다는 여러 가지 물건들은 효과가 증명되진 않아서, 아이만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착잡한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속상한 마음이 느껴지면, 아이 발가락을

조물조물 주물러주고. 모든 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날은, 그런대로 아이를 편안하게 쳐다본다. 아이의 엄지발가락이 휘었든 곧았든, 예쁘게 보이는 날도 있다. 그때는 "예쁘다, 곱다"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아마도, 아이의 마음도 나와 같이 흘러가고 있을 거다.



마음이 휘는 것도 눈에 보인다면..



놀란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니, 나에게 이 생각이 찾아왔다. 아이 몸의 변화는 눈에 보여서 그나마 챙겨볼 수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언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그 마음은 안녕할까?!



아이의 발가락을 이야기하다가 말고,
이게 왠 삼천포인가


그러게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로 아이의 마음이 눈에 보였으면 좋겠어요.

이제 아이가 10살 정도 되니, 자신의 마음을 모두 얘기하지 않더라고요. 어떤 것은 수치스럽고, 어떤 것은 엄마가 속상할 것 같고, 어떤 것은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한편으로는 '아이가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싶은데, 그러다가도 '화나고 짜증 나는 것을 참는 대신 몸을 긁는 증상'이 아이에게 나타나면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편하게 화를 내고 짜증 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화나고 짜증 나는 마음이 말로 표현되지 못하고, 몸을 긁는 행동으로 휘고 있으니까요. 이마저도 못하게 되면, 그 마음은 우울과 슬픔으로 휘게 될 텐데.. 그것은 막고 싶습니다.



다시 발가락 이야기로 돌아와서



큰 병원에서는 1년마다 점검을 해보다가, 발가락이 15도 이상 휘게 되면 수술로 바로 잡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나는 천하태평은 못되는지, 다시금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더라. 아니, 그냥 지켜보는 게 정말 맞는지에 대한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이럴 때 종종 이용하는 표현 '삼세판'. 내 마음에 여전히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을 바에는 한 번만 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포기를 해도, 그때 해야 내가 미련을 완전히 버리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 내 발에 문제가 생겼고, 내 발이 정형외과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발등에서 이유 모를 통증을 느끼며, 나는 첫째에게 말했다. 엄마랑 한 번만 더 병원에 가보자고.


다음 날 우리는 사이좋게 정형외과로 향했고, 둘이 나란히 발 사진을 찍었다. 나란히 앉아서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었고. 이내 아이도, 나도, 의사 선생님도 같이 웃어야 했다. 그중 아이가 가장 큰 소리로 웃었다.  



어머니의 발가락이 더 많이 휘셨네요



아이는 평발이라서, 나는 20-30대에 뾰족구두를 너무 많이 신어서, 발가락이 휘어있다. 의사는 '엄마 마음이 편안해질 몇 가지 도구들'을 알려주었다. 내가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고 사정해서 얻어낸 것들이긴 했고, 이전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불편하고, 그 효과가 의학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습니다"라는 설명도 잊지 않으셨다. 진료를 마치며 의사는 ‘아이가 아니라 어머니가 더 잘 착용하셔야 한다'는 조언도 꾹 눌러 챙겨주셨다. 그것은 마치 '아이는 크게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 자신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들렸는데, 듣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와서 발가락을 잡아 주는 것이며, 발바닥 아래 까는 것이며, 몇 가지를 두 개씩 주문했다. 그리고 그 뒤로 왠지 마음이 불안할 때나,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고 싶을 때,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 마음이 필요한 순간'에 그것들을 내 발에 착용한다.


내가 찾아간 세 병원에서 도구에 대해 모두 같은 의견을 받은 덕분에, 나는 이 도구들에 강박을 갖진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휘어진 발가락을 펴줄 거란 기대가 전혀 없다. 다만, 그냥 좀 불안할 때 그것들에게 내 마음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부탁하고 있다.


아이에게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실내화에 아치를 잡아주는 깔창을 깔아주었는데, 그때 내가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해주느니, 그거라도 하나 해주고는 할 일 다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 발가락이 왠지 걱정되는 날에는 '내가 내 발가락에 장치를 걸고 있는 것'으로 잔소리를 대신한다.  

그럼 아이는? 그것을 보고 본인도 같이 걸치거나 아니거나.



이렇게 우리는 발가락에 대한 불안을 끝냈다.



불안은 끝냈지만, 물론 아이 발가락이 더는 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바람과 불안은 다른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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