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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Apr 16. 2024

아무튼 아스파라거스

탐욕이든 욕망이든

마흔 중반인 내가 새순을 먹는 이유는 혹시라도 내게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다.

통키가 그랬듯이, 이왕이면 불꽃 파워로!

그런데, 그게 돼야 말이지.


'불꽃처럼' 일을 몰아붙이다가 체력이 더 급격히 쇠해져서 일상이 어그러지는 경우를 언제부턴가 경험하다 보니, 오히려 몸을 사리게 되는 요즘이다. 모처럼 신경 써서 몸에 좋다는 것으로 점심 한 끼를 먹고 나면, 졸려서 눈이 더 침침해지는 것도 이제 일상이다. 그때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진지 드시고 잠시 눈을 붙이셔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아하,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다.


내가 새순을 집어먹으며 바라는 '힘'은 초년생일 때 느꼈던 '혈기왕성'이다. 몸에 탄력과 텐션이 높은 상태말이다. 물론, '노화'가 시작되는 중년의 나이에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탐욕'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때부터는 중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란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연어의 움직임'에 가깝다는 것도 인정한다. 심지어, 그 연어들은 알을 낳으러 가는 초년생이라는 사실을 되뇌며, 다시 그 시절처럼 ‘혈기왕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내 상황에 실소가 나온다.


그래도 나는 이 봄에 '새순'을 계속 챙겨 먹고 있다. 내 마음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가 몇 개 있는데, 그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불쏘시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불씨들 덕분에 '마음'에서는 미약하나마 여전히 꿈틀거림이 느껴지는데, 몸은 지쳐만 가니 그냥 놔둘 수가 없다. 마침 계절을 맞이한 '봄의 새순'에는 힘이 많다니, 비싼 돈 주고 보약도 먹는데, 탐욕이고 뭐고 챙겨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생각해 보면, 마음에는 '노화'라는 강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듦에 따라 점차 벌어지는 '몸과 마음의 간극'을 수용해야 하는 과제가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이 늙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좋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떠올리면, '노화'를 대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희망'과 '실마리'를 손에 쥐는 느낌이 든다.


요즘 내 마음은 몸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을 찾자!"

마음에 힘이 없을 때는 마음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에 힘이 생기니 몸에게 "먹자"라고 하는 게 신기하다. "이왕이면 힘이 나는 것으로 먹자!"라는 마음의 요구에 따라, 나는 요즘 싱싱한 아스파라거스를 씻고 볶아서 아삭아삭 오독오독 씹어먹곤 한다. 이때는 마치 (마음의) 모닥불에 장작을 집어넣어 주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아스파라거스가 장작처럼 생기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마음의 요구에 몸이 움직이면, 내 마음은 신난다.


마음이 신나면, 몸에도 생기가 돈다.

'혈기왕성한' 정도는 아니지만, 생기가 돌면 몸이 한층 가볍게 느껴진다. 오라, 이게 '불꽃 파워'인가? 아직 그 크기가 매우 작아서 그렇지, 불꽃이긴 한가보다. 그렇지. 그렇네.   



요런 느낌?




*사진출처: 재료의 산책, 요나, 어라운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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