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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Sep 04. 2020

비교하지 않으니까, 맘 편해

수영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그녀의 비결

평소 무뚝뚝하게 별 표정 없이 수영장을 들락날락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의 나이는 대략 60대 정도. 체구는 역도선수 장미란을 연상시킬 만큼 여장부의 실루엣을 갖고 있지만, 새하얀 물렁살을 보니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한 달 만에 자유형을 배워서 대충이라도 한 바퀴를 돈다. 하지만 그녀가 자유형으로 한 바퀴 도는데 걸린 시간은 한 달이 아닌, 1년이다.


그녀와 안면을 트게 된 것은, 특유의 밝은 기운 때문이었다. 샤워실에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었다. 옆에서 그녀가 "이제 물에서 뜰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가지런한 하얀 이가 모두 드러나게 웃고 있다. 수영을 배울 때 며칠이면 물에서 뜨는 것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터라, 그 말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뒷 이야기가 더 가관이다. "물에서 뜨는데 6개월이 걸렸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놀라움의 탄성이 나왔다. "네? 6개월이요?"


여성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 하고도 말을 틀 수 있는 기술도 나이만큼 늘어나는 것 같다. 안면도 없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누구보다 활짝 웃는 그 표정에 압도당해서 발가벗은 몸으로 술술 꺼내놓는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넋 놓고 들었다.


그녀의 사정은 이렇다. 과거에 조그맣게 장사를 하면서 하루 종일 가게에 매여있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몇십 년 동안 장사를 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장사를 하며 자기 몸을 돌본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게에 매여 있어서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살이 찌고, 나이가 들어가며 노화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몸무게가 늘면서 무릎 관절이 심하게 약화되었다. 더 이상 장사도 할 수 없었다. 장사를 정리하고, 시작한 운동이 수영이었다. 병원에서 무릎관절이 안 좋으니 수영을 해보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의사 말을 잘 들었던 그녀는 그렇게 수영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평소에 물과 친숙하게 놀아본 경험이 없었다. 바닷가에 가서 놀아본 적도 없다. 왜 그렇게 팍팍하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온다는 그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버린 과거이다. 이제 수영을 배운다. 가슴 높이까지 차오르는 물을 처음 대할 때는 너무 무서웠다. 킥판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속 다짐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수영강사는 물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대한다. 또한 그들의 공포를 극복할 만한 다양한 스킬과 언어구사력을 갖고 있다. 덕분에 운동신경이 없고, 물을 무서워하는 어른들도 대부분 몇 개월이면 어설픈 자유형이라도 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물에 대한 공포는 수영강사도 포기했다. "그냥 킥판 잡고 하세요~"라며 거의 1년을 킥판을 잡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자유형을 배운 것이다. 지금까지 수영장의 많은 초급인들을 지켜보았다. 매월 1일이면 새로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적게는 10명에서 20명까지 초급 레일에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되어 반토막이 되고, 한 달이 지나면 또 반토막, 두 달이 지나면 남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시작해야 할 절실한 이유만큼, 포기할만한 절실한 이유도 많은 것이다.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 같은 경우, 무리하게 연습해 도리어 관절이 아파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다. 




아침 7시에 수영을 하러 갈 때면, 그녀는 6시 수영을 마치고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보는 사람이 기분 좋게 할 만큼 활짝 핀 해바라기 꽃을 닮았다. 샤워실로 향하는데, 수영을 끝낸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이제 킥판 빼고 자유형 해요!" 라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 말을 듣자, 그녀보다 내가 더욱 신이 났다. "정말 대단해요~"라며 그동안 의 노력을 맘껏 칭찬해주고 싶었다. 


수영장에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나비처럼 날아 우아한 물살을 튕기는 접영부터, 지칠 줄 모르게 이어지는 자유형을 하는 사람까지. 그런 사람들을 보노라면 여전히 나의 수영은 미약하고, 초라하다. 분명히 혼자 하는 수영이지만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비교하게 된다. 그럴 때면 더욱 열심히 하기 위해 힘이 들어가고, 힘이 들어가 면 더 억지스러운 수영을 한다. 결국 그날의 수영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식하는 순간, 수영의 동작이 꼬여버린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수영을 했다면 1년을 꾸준히 강습받기 어렵다. 서로 비교하는 말을 노골적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함께 시작한 동기가 있다면 나도 모르게 실력을 비교하게 된다. 또한 함께 연습하는 사람들과 수영실력을 맞추기 위해 자유수영 시간을 더 내어 고군분투한다는 것을 그동안 많이 보았다.


그녀는 매일 6시에 수영장으로 나온다. 월, 수, 금 강습 일과 화, 목, 토 자유수영 때에도 같은 시간에 수영장에 입장한다. 만날 때마다 눈과 입이 반달처럼 활짝 웃으며 수영장을 나온다. '너무 재미있었다'는 표정으로, '수영실력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남과 비교했으면 벌써 그만뒀어요. 비교하지 않으니까 맘 편해~"라며 그녀는 말한다.  1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수영이 맘처럼 되지 않아 그동안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 수영강사는 자꾸 해보라고 하는데, 겁난다고 뒷걸음질 치는 시간이었다. 수영강사의 눈치도 많이 봤다. 그럼에도 수영을 그만두지 않았다. 덕분에 1년 만에 자유형을 터득했고, 이제는 물이 이전처럼 무섭지 않다. 


나의 수영시간이 저녁으로 변경되면서 아침 수영을 하는 그녀를 한 동안 보지 못했다. 몇 개월 만에 토요일 아침 수영을 하며 그녀를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나를 보며 그녀는 "이제는 한 팔 접영 배워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속에는 뿌듯한 마음이 더해졌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순서로 수영강습이 이루어진다. 접영을 배운다는 것은 배영과 평영을 배우고 마지막 단계라는 뜻이다. 그 접영을 그녀가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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