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화려한 수영복에서 단순한 검정색으로 돌아왔다
수영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의 복장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수영복과 수모, 수경의 세트 구성만 봐도 '저, 이제 수영 배워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과감한 노출은 노! 과감한 색깔도 노! 튀는 디자인은 노!
그러다 보니 검정 수영복에 검정 수모, 검정 수경까지 온통 블랙으로 통일하는 경우가 많다.
첫 수영복을 구입하겠다며 인터넷 쇼핑을 뒤적거린다.
실제로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수영복이 검은색이어도 디자인별로, 브랜드별로, 미세하게, 확연히 다르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결국 제일 많이 팔린 수영복으로 선택한다.
4개월 정도 되니, 그동안 입었던 검정색 수영복을 바꿀 때가 왔다.
염소성분이 섞여있는 물을 자주 접한 수영복은 어느 순간 삭는다.
보통 엉덩이나 허리부위 부터 색이 바랜다.
원래의 색감이 바래지고, 그 상태로 더 입다 보면 원단이 점점 얇아져 살이 보일 듯 말 듯 한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이 되기 전에 주변 지인들은 한마디 건넨다.
"수영복 바꿔야겠어!"
그제야 수영복을 자세히 훑으며 미세하게 보풀이 일어나 삭은 수영복을 확인한다.
4개월이 지나 초급 딱지도 뗄 정도가 되니, 검정 수영복은 다시 입고 싶지 않다.
누가 누군지 구별도 되지 않는, 초급인들의 교복과 같았던 검은색 수영복, 수모, 수경을 모두 교체했다.
하늘색의 그러데이션 수영복, 하얀 바탕의 어린 왕자 그림이 그려져 있는 수모, 미러가 있어 눈알이 보이지 않는 분홍색 수경까지.
나만의 취향이 스며있어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몸도 가볍고 수영도 더 잘되는 것 같다.
매일 수영장을 가고, 1시간 이상씩 수영을 하다 보니 수영복의 교체주기가 생각보다 빨랐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 같은 경우, 한 달에 한 번이면 수영복을 바꿔줘야 했다.
가끔 수영복을 1년 입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봤지만, 그런 경우 수영복이 많이 늘어나 있다.
타이트하게 몸에 밀착되는 수영복을 좋아한다.
몸에 붙어있는 살들을 구겨 넣는 정도의 느낌적인 느낌!
몇 개월 주기로 찾아오는, 실력이 정체될 때마다 찾아오는 수태기(수영 권태기)를 각양각색의 수영복 구입으로 극복했다.
하늘색, 화려한 조합의 디자인, 하얀 체크무늬, 와인색, 형광색 등등 다양한 색깔의 수영복에 도전했다.
수영복을 교체하면서 초급인들의 교복과 같은 검정색은 피했다.
다양한 색깔, 이왕이면 밝고 화려한 색감의 수영복을 선호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검정색의 단순한 수영복으로 돌아왔다.
이전에는 분명히 화려하고 쨍한 색감의 수영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의 수영복이 더 이상 관심이 되지 못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취한 '수영 동작의 선'이었다.
자유형을 할 때 물안으로 입수되는 곡선을 그리는 팔,
배영을 할 때 물과 어우러져 살랑이는 다리,
평영을 할 때 가슴이 올라오며 모아지는 팔,
접영을 할 때 시원하게 뻗어지는 팔과 돌고래 꼬리처럼 물을 박차는 발.
수영 경력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영법이 나의 몸에 맞게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중이다.
더욱 편안해지고, 더욱 부드러워지고, 더욱 빨라진다.
영법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면서 수영복보다는 영법을 소화하는 동작에 관심이 쏠렸다.
화려한 색감의 수영복이 더 이상 나를 기분 좋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나의 몸을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곡선으로 만들고 싶다.
내 몸을 선으로 상상하며 파아란 수영장에 '드로잉' 하는 것이다.
마치 흰 도화지에 가장 단순한 연필로 그린 드로잉이 사람의 마음을 끌 듯,
나의 수영도 그런 단순한 선의 움직임으로 보였으면 한다.
결국, 가장 단순한 검정색 수영복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