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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y 06. 2021

상처에 언어를 입힌다

'고통'을 일부러 찾는 사람은 없다. '고통'이라면 어떻게든 도망치고 피하고 숨겨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고통'을 자처하기도 한다.



헬스를 하면서 일부러 근육에 상처를 내어 근육을 키운다는 해괴 망측한 운동 법칙을 배웠다. '일부러 상처를 내다니' 미친놈들이라 생각했다. 근육에 힘을 가해 상처를 내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단단해지고, 커지는 것이다. 이들은 근육에 상처를 내는 힘든 운동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고통' 뒤의 성취감이 더 커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장할 수 있는 꾸준한 시간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글쓰기는 헬스처럼 외형적인 변화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나는 미세하게 알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런 나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보기도 한다. 내적인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외면으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 대한 글을 쓰노라면 피하고 싶었던 '추악한 감정'과도 만나고 '상상할 수 없었던 공포'와도 만나고 '누구보다 찌질했던 감정'과도 만난다. 음탕하고 음흉한 구렁이 같은 감정에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표현되지 못한 무수한 감정들에 스스로 놀라며 당황해한다.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분노에 치를 떨며 몸이 떨리고,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숨고 싶고, 이대로 지구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한다. 



그럼에도  글쓰기의 고통을 자처한다는 것은 분명, 뭐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근육을 일부러 상처 내고 회복하면서 성장하듯,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 상처를 건드리고 그 상처에 언어를 입히다 보면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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