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행랑 치기에는 이미 늦었다

등수는 중요치 않았다

by 홍시

드디어 경기를 치루는 선수용 수영장으로 향한다. 선수용은 연습용과는 규모면에서 확연히 달랐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시합을 겨뤘던 수영장이었다. 국제규모에 맞게 깊이도 넓이도 헤아릴 수 없었다. 관람객에서 바라보던 선수영 수영장 레일 앞에 서니 예상외로 두근거리던 심장은 잦아들었다. 다만 50m의 끝이 희미하게 보인다는 것뿐. 마음은 눈앞의 현실도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멀어져 보이는 거리감에 압도당해, 멀쩡하던 시력도 기능을 하지 못했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 이대로 줄행랑치기에는 늦었다. 그 받아들임이 나를 평안함으로 안내 했다.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자칫하다간 풍덩 빠져버릴 수 있다. 내 키의 2배나 되는 저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 자신은 없다. 배영 스타트대에 매달려 숨죽인다. 대회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스타트였다. 동네 수영장에는 배영 스타트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무슨 배짱인지 따로 연습을 하지 않았다. 경기 전날, 연습용 수영장에서 배영 스타트를 하고 있던 수영인을 눈치껏 보고 몇 번 따라한 게 전부였다. 안심이 되었다. 나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는 수영인도 배영 스타트를 능숙하게 해내지 못했다. 나도 어설프지만, 분명 다른 이들도 어설플거야 라고 생각하니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


귀만 열어 놓으면 된다. 준비 신호와 함께, 바로 이어지는 시작 신호. 그것만 듣고 움직이면 된다. 그 생각뿐이다. 시작 신호보다 먼저 움직여서 실격되는 경우가 경기를 관람해보니 왕왕 있었다. 실격은 피하고 싶었다. 귀는 활짝 열려 있었고, 정확하게 시작 신호가 들렸다. 몸이 튀어 오르면서 물속으로 쏙~ 들어가야 하는데, 아쉽게도 철푸덕 거친 소리와 함께 흰거품이 일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제부터 몸은 쉴새없이 움직여야 한다. 어떻게 팔을 던지는 지, 발차기를 해대는 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은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50m경기에서는 턴이 없으므로 쭉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쭉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팔로 레일을 치고 있다. 똑바로 가지 못하고,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 눈앞에 따라가야 할 이정표가 없다. 동네 수영장에서는 천장의 바둑판 모양의 직선무늬를 보고서,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흔들려도 그 선을 보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회 수영장의 천장은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의 거리만큼 높았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직선이 없었다. 무얼 보고 가야 하나, 이정표를 잃었다. 이정표 없는 배영은 들쭉날쭉 했다.


해매는 와중에도 앞으로 나아갔고, 어느덧 5m를 남겨두고 깃발이 보였다. 도착점까지의 거리를 알려주기 위한 깃발이다. 연습할 때는 5번만 팔을 던지면 갈 수 있었다. 5번만 팔을 던지면 도착점에 터치할 수 있는 것이다. 곧 끝날 것이다, 라는 안도감에 속도가 느려졌다. 머릿속으로 숫자 5번을 샜지만, 손은 허공에서 맴돌았다. 당황되어 몸이 휘청거린다. 코로 입으로 물이 들어가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반쯤 정신을 놓고, 간신히 손이 터치패드에 닿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승부욕을 미련 없을 만큼 배설해냈다. 시원해야 했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남아있는 힘도 없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3m 깊이의 수영장에서 나와야 했지만, 처음으로 마주한 물의 깊이에 아연실색 되어버렸다. 발이 닿지 않는 수영장은 처음이었다. 발이 닿지 않는 바다도 가보았지만 그때는 튜브가 있었다. 정신이 살아 있었다면 깊이는 문제 되지 않았다. 천천히 물에 떠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수영을 해서 나오면 된다. 그정도의 수력은 된다. 하지만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물속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애꿎은 레일만 생명줄 처럼 잡고 있었다. 경기를 함께 뛴 수영인들은 모두 수영장을 나간 뒤였다. 수영장 위에서 지켜보던 수영 심사원은 옆으로 나가라고 손짓했다. 옆으로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곧장 올라가겠다며 손가락을 위로 손짓했다.


턱이 꽤나 높은 위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갔다. 담을 넘는다고 상상하면 얼추 맞다. 기어서 올라가는 폼이 스스로 생각해도 창피했다. 전국대회의 위상답게 유튜브로 모든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었고, 혼자 위로 올라가면서 영상에 찍힐 나의 커다란 엉덩이가 걱정이 되었다. 출구로 나가 물품 보관함에 있던 스마트폰을 집었다. 남편이 안정감 있게 잘 하던데, 라며 메시지를 남겼다. 걱정하던 엉덩이 얘기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어 나의 경기 영상을 바로 보았다.


내가 어떻게 배영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몇 등을 했는지도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래도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서라면 당당히 밝히리라. 8명 중에 7등. 당황스러운 마지막을 똑똑히 기억하는 나로서는, 전혀 기대치 않은 결과였다. 경기가 끝난 후를 기다렸다. 나의 창피함이 여과 없이 전국에 생방송으로 노출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다, 영상으로 돌아왔다. 카메라맨은 허투루 영상을 찍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위로 낑낑대며 올라가는 장면은 없었다. 배영인들이 모두 터치패드를 찍고, 다음은 다른 그룹이 출발선에서 준비하는 영상으로 이어졌다.


헛웃음이 나면서 그제야 뱃속이 꼬르륵 거렸다.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뭐든 먹었으면 했다. 수영장 시설 안에는 식당은 없었지만 카페가 있어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챙겨 입은 뒤 카페에 앉아 있으니 내가 배영 50m 경기를 뛰었구나 실감이 되었다. 오후에 예정된 배영 100m경기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이대로 포기해도 하나의 경기를 뛰었으니, 미련이 없었다. 내 능력을 뽐내고 싶었던 승부욕은 충분히 발설했다. 나에게 남아있는 승부욕은 없었다. 예상보다 큰 대회에 참가한 것만으로 가슴이 충만했다. 더 이상의 욕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지만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감 때문이리라. 카페를 가득 메운 수영인들을 바라봤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대회에 참여했겠지. 막 경기를 마쳤는지, 몸에는 물기가 그대로인 수영복 차림의 수영인들도 지나쳐간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기록이 안 좋네.” “난 이번에 스타트 하다가 수경이 뒤집혀져서 눈에 뵈는 거 없이 했네.” “평소에 하던 거 보다, 잘 안되네.” 다들 자신만의 경기를 치룬 것이다. 몇 등을 해서 아쉽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수영인들에게 등수는 제일 중요한 결과가 아니었다.


씁쓸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니 100m 경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흐려져 갔다.


등수가 뭐든, 모든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라는 공통의 표정이 어려 있었다. 그 표정 덕분인지 한 번 더 뛰어보자, 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번에는 등수에 연연하지 말고 동네 수영장에서 하듯 유유히 배영을 하리라. 난 배영 100m 경기의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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