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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소주 한 잔

결혼이라는 강을 건너_2

by 홍시

“오늘 기사 마감했나?”

“아니, 아직.”

“지금까지 뭐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까지 올리겠습니다.”


찬수는 작은 인터넷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박봉이었지만 투철한 사명감만으로도 일할 의지는 충분했다. 3년차에 접어든 기자 생활도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매주 다가오는 마감일은 언제나 피를 말렸다. 주간신문의 특성이었다. 위안이라면 일간신문은 매일이 마감일이니, 그보다는 나은 것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감이라고 해봐야 사무실에서 밤을 새는 일인데 어차피 돌아갈 집이 없었다. 그는 사무실 한 공간에 간이침대를 들여놓고 살고 있었다. 방세를 아낄 수 있다는 그럴듯한 명목이기도 하지만, 서울의 치솟는 방세를 감당할 만큼 벌이가 받쳐주지 못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도통 통장에 남아있지 못했다. 찬수는 사무실에서 자고 먹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고생이며 추억으로 여기고 있었다. 가끔 희연이와 만나면 데이트 비용을 내지 못할 때 느끼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불편함이 다소 있었지만, 희연이는 찬수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돈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1년만 더 고생해서 실력을 쌓으면 메이저 언론사로 직장을 옮길 계획이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젊고 건강한 몸뚱이가 있고, 언제든 술을 사줄 학교 선배들도 주변에 많았다. 찬수의 학교 선배들은 메이저 신문사에 취직한 사람도 있고,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도 있고, 공무원이 된 사람도 있었다. 뉴스에서는 청년들의 구직난이 날이 갈수록 힘겹다고 말하면서도 주변을 보면 다들 잘나가는 사람들뿐이었다. 찬수가 일하고 잠자는 사무실이 위치한 광화문의 거리는 그랬다. 다들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걸었고, 점심이면 배를 채우기 위해 맛집의 줄은 하염없이 길었다. 저녁이면 술집마다 성황이었다. 열심히 일한 자, 부어라 마셔라! 외치며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기사 마감을 맞췄다. 진을 빼서일까, 갑자기 밀려오는 공허함에 가장 친한 황 선배에게 전화를 건다.


“선배, 술 마시고 있지?”

“어떻게 알았냐, 임마. 너도 나와!”

“콜! 어디야 10분 내로 달려간다.”


새벽 2시에 광화문 뒷골목은 한 낮보다 더 환하다. 술을 좀 마셨는지 황 선배의 얼굴은 발그레했다.


“뭐야~ 얼마나 마신거야?”

“이제 시작이야, 임마. 너도 술잔 채워.”

“이모~ 여기 소주잔 하나, 참이슬 하나요.”


술에 취했는데도 황 선배는 찬수의 걱정 어린 표정을 눈썰미 좋게 알아봤다. 대학에서 선후배로 지내면서 방을 얻어 함께 동고동락한 서로 모르는 게 없는, 지방에 살고 있는 가족보다 찬수를 더 많이 알고 있는 선배였다. 황 선배는 어엿한 대기업에 들어가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생활을 당연하다는 듯 불평 없이 해나가고 있었다. 그의 직장 역시 광화문이었고, 12시에 술자리를 시작하는 황 선배를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었던 찬수는 새벽 2시에도 미안함 없이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뭐냐~ 자식. 고민 있으면 이 형아 한테 말해봐.”

“희연이가 결혼하재요.”

“결혼?”

“니 나이가 몇이지?”

“스물일곱이요.”

“아! 희연이는 너보다 2살 연상이지?”

“여자 나이 스물아홉이면, 결혼이 급할 때도 됐네.”

“결혼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모아둔 돈도 없고 학자금 대출 빚만 있는데.”


황 선배는 찬수의 고민을 듣고, 명쾌한 대답 대신 투명한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남자로서 집 한 채는 준비하지 못해도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결혼한다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찬수의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 등록금도 마련하지 못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4년 동안 꼬박 월급을 댕강 잘라서 갚아야 하는 처지였다. 찬수가 말하지 않아도 경제 상황을 뻔히 알고 있는 황 선배는 특유의 장난끼어린 웃음을 지으며 찬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찬수야, 그냥 결혼 해버려. 돈 좀 없으면 어때! 나중에 네가 많이 벌면 돼지. 기죽을 거 없어.”

“그래도 될까요?”

“사랑이 밥 먹여 줄거야. 으하하핫~”

“으하하핫! 그렇겠죠.”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황 선배의 단순한 대답이 찬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의 맘속엔 이미 답이 있었다. 희연이를 놓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했다. 결혼으로 마음이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혼은 현실이었다. 견고하게만 보였던 현실을 황 선배가 웃음으로 녹여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시시껄렁하게 다니는 것만 같았던 황 선배가 간만에 어른처럼 느껴져 찬수도 연신 술잔을 가슴으로 들이켰다. 씁쓸한 소주가 오늘따라 달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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