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 같은 사람 만나지 말아라

결혼이라는 강을 건너_3

by 홍시

“그동안 모아둔 돈이 총 2천만 원이야. 신혼살림은 내가 사는 여기 옥탑방에서 시작하자. 다시 집 구할 거 없잖아. 결혼식은 간소하게 하자. 아, 그리고 남은 돈은 일단 학자금대출부터 갚자. 빚 없이 시작하는 거야. 홀가분하게.”


희연이는 불안해하는 찬수에게 대강의 결혼계획을 설명하고는 여느 때처럼 수많은 인파가 들고나는 지하철로 몸을 싣는다. 성수역에 위치한 희연이의 직장은 집에서 한 시간 거리였다. 분주한 아침에 교통체증이 없는 지하철 선택은 필수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장 취업해서 6년차의 사회인이 되었다. 직장을 한 번 바꾼 적은 있지만 교통수단이 바뀐 적은 없다.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면 되지 지하철도 타지 않고 몸이 편하겠지만, 서울의 물가를 잘 모르는 소리이다. 성수역은 아차산 부근과 비교해 월세가 두 배 이상 된다. 직장인들이 직장을 등지고 외지로 더 외지로 향하는 것은, 높은 하늘을 찌르는 월세도 한 몫 하고 같은 값이면 조금이라도 숨통 트이는 넓은 집에서 살고 픈 이유이다.


잡지사 편집 일을 하는 같은 직장의 동료들은 희연이와 비슷한 처지였다. 다들 결혼하지 않은 생기발랄한 20대의 청년들이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방 한 칸 어렵게 구해 일을 하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어려움을 공유해서인지, 희연이는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서울의 사회초년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엇비슷하게 닮은 것처럼 보였다. 같은 직장이 아니어도 비슷했다. 매일 출퇴근 지하철에서 빽빽하게 찬 사람들을 비집고 제 한 몸 실어보겠다고 꾸역꾸역 몸을 접어내는 처절함은 지하철 내에서 만큼은 평등했다.


해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터널을 지하철이 내달릴 때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처럼 어두컴컴한 현실처럼 보였다. 눅눅하고 습기 가득 찬 터널 속 공기는 지하철 안에도 스며들어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축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상으로 지하철이 내달릴 때는, 투명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햇살 가득한 삶의 풍경이 더 없이 근사해 보였다. 좀 만 노력하면 저 밖의 따스한 햇살이 희연이의 품으로 들어올 것 같은 희망이 지하철을 타면서 교차하고 있었다. 어둠과 햇살, 매일 지하철을 겪으며 그녀가 발견해낸 단순한 삶의 진리였다.


지하철은 덜컹거리며 한강을 건너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오늘따라 멀고 길게 느껴진다. 차창으로 한강이 내려보이자, 희연이는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그녀는 곧 결혼이라는 강을 건널 것이다.


희연이의 엄마 한 씨는 아파트 청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있었다. 아버지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이다. 몇 달 만에 찾아온 딸자식을 앞에 두고 한 씨는 연신 걸레질을 하고 있다.


“웬일이냐, 연락도 없이.”

“뭐, 내가 연락 하고 와야 되나.”

“그래도, 특별한 날도 아닌데 오니까 그렇지.”

“걸레질 그만하고, 잠깐만 앉아봐. 할 얘기가 있으니까.”

“얘가 왜이래. 무슨 일 있냐?”

“일은 무슨 일, 나 결혼하려구.”

“결혼? 언제?”

“3달 뒤에 하면 어떨까 하는데.”

“아이고 얘 좀 봐, 결혼 안한다고 설레발 칠 때는 언제고. 갑자기 3달 뒤라니.”

“그럼, 결혼은 찬수랑 할 거냐?”

“응, 개 말고 또 누구 있수.”


한 씨는 결혼 소식을 듣고, 놀람과 반가움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여자 나이 30이 넘으면 똥차가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은, 늦은 여자들이 많았지만 당장 딸년이 그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도 엄마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서려 있었다. 결혼해야지.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잔소리를 습관처럼 하던 한 씨였다. 그때마다 희연이는 소리를 빽 지르며 반기를 들곤 했다.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야. 난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커리어우먼으로 당당히 일로 성공해서 혼자 살 거야. 결혼하면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애도 키워야 하고, 이것저것 따져봐도 여자에게 불리하잖아. 나는 내가 돈 벌어서 취미생활도 하고, 해외여행도 가고, 서울의 아파트도 하나 살 거야. 두고 보라구!”


희연이의 반기는 ‘결혼해야지’ 잔소리를 쏟아내는 것과 반대로 한 씨에게 흐뭇함이 되곤 했다. 적은 돈을 쪼개고 쪼개서 절약하며 희연이의 대학 등록금을 4년 동안 대준 것도 시대 흐름이 변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한 씨는 진심으로 바랬다. 희연아, 엄마처럼 고생하면서 살지 마. 하지만 희연이 앞에서는 절대 내색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결혼만큼은 해야지 별 수 있나 라는 체념이 있기도 했다.


어릴 적 희연이가 마주했던 결혼이라는 그림은 지긋지긋하다, 였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예쁜 주방에서 요리하는 엄마가 있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양복입고 아침에 출근하고 해지면 퇴근하는 평범한 가정이 빈번하게 보였지만, 그녀는 텔레비전 속 결혼을 절대 믿지 않았다. 그녀가 사춘기를 맞이할 동안 방 한 칸에서 부모와 여동생이 함께 살았다. 아버지가 직장을 다닐 때는 그래도 여느 집과 비슷한 가정이었다. 하나가 쓰러지면 연쇄적으로 모두가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아버지의 직장이 사라지고 실업자 신세로 몇 년을 지내자 집 안은 단란함 보다는 냉냉함이 감도는 집이 되었다.


희연이가 학교 다닐 때, 시계 부품 공장에 다녔던 한 씨는 매일 야근을 했다. 밤 9시에 돌아와서야 저녁 밥상을 대충 차려 먹었다. 한 씨는 찬 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짠지가 전부였는데도, 밥상 앞에서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가난한 살림이야 불편하긴 해도 치를 떨게 싫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다른 직장을 구하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간판 기술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나름 기술자였지만, 간판업에도 기계화는 빠르게 전파되어 더 이상 사람이 필요치 않았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에는 아버지는 늦었다고 생각했는지, 매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술을 마신 아버지는 포악해지고, 한 씨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부부싸움은 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희연이는 싸움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면 얼른 밖으로 피신했다.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한 씨에게만 화풀이를 했다. 희연이와 여동생은 건드리지 않았다. 밤중에 동네 골목을 쏘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집을 들썩이게 했다. 한 씨는 눈물을 훔치며 그녀에게 주문처럼 말했다.


“너는 아버지 같은 사람 만나지 말아라. 아휴~ 지긋지긋해.”


한 씨의 푸념은 희연이가 자라는 동안 몸과 마음 곳곳에 각인이 되었다. 결혼은,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씁쓸한 소주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