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강을 건너_4
후다닥 콩 볶아 내듯 결혼식을 치뤘다. 희연이네나 찬수네나 너나없이 사는 형편이 고만고만해서 그 흔한 예단도 대폭 축소했다. 작은 결혼식이 추세였다. 여전히 예식장이 호황을 이루었지만, 한편에서는 거품을 줄이기 위해 무료로 빌려주는 공공의 공간도 있었다. 무상으로 결혼식장은 빌리고, 이벤트 회사에 의뢰해서 결혼식을 진행하고, 식사는 나름 평판이 좋은 출장 뷔페를 이용했다. 결혼사진은 따로 찍지 않았다. 희연이는 사진 찍는 게 늘 거북했다. 잡지사 편집 일을 하면서 숱한 사진을 컨택하고 매만지지만, 그럴수록 사진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카메라 렌즈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해야 하는 일에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다행히 찬수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니, 결혼식이 정말 간소해졌다. 주변 지인들만 적절히 초대하면 될 일이었다.
결혼식의 반 이상은 양가 부모님의 손님이었고, 반은 희연이와 찬수네 직장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적당히 시끌하고, 적당히 북적거렸다. 얼렁뚱땅 결혼식을 치룬 것 같아, 다소 정신이 없었지만 끝냈다는 홀가분함이 좋았다. 인생의 크나큰 산 중에 하나의 산을 오른 것이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대학에 들어가면 하나의 산을 넘었다 여겼고, 취업을 하면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 여겼다. 매번 제일 큰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 산만 오르면, 더이상 오를 산이 없을 것이라 기대했다. 여기가 끝이겠지. 하지만 하나의 산을 오르고 내려갈 틈도 없이 또 하나의 산이 떡하니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몇 개의 산을 더 올라야 끝나는 것인지,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그 숫자가 별 의미 없어진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3박 4일 제주도로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다. 양가의 부모님과 친인척들에게 한복을 입고 절을 해야 하는 형식적인 인사도 해치웠다. 그리고 돌아온 신혼부부의 보금자리 옥탑방. 희연이에게는 익숙해서 신혼살림이라고 할 색다른 분위기는 없었지만, 찬수가 들어오자 방 안에 사람냄새가 훨씬 짙어졌다.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답게 서로 시간이 되는 사람이 음식을 했다. 일부러 정한 것은 아니었다.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고 있었다. 오늘은 찬수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희연이는 저녁 메뉴가 궁금해 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은 뭐할 거야?”
“오므라이스 어때?
“좋아, 대신 들어갈 때 내가 맥주랑 안주 좀 사갈게.”
찬수라는 남자가 옥탑방으로 들어왔다. 사귀면서 옥탑방을 드나들긴 했지만, 잠시였다. 밥은 밖에서 먹고, 별이 총총 떠있는 야밤에 옥상에서 맥주 한잔 하는 정도였다. 사랑을 나누는 일도 옥탑방은 사용되지 않았다. 희연이는 사적인 공간인 옥탑방을 되도록 지키고 싶었다. 모텔비용을 줄이려면 옥탑방이 좋았지만, 그 비용을 치루는 한이 있어도 옥탑방은 희연이만의 공간이길 바랬다. 찬수의 살림살이는 책 한 박스, 옷 한 박스가 전부였다. 이사라고 할 것도 없이, 택시로 간소한 짐을 실어 희연이의 방에 배치했다. 옷장에 찬수의 옷을 켜켜이 넣고, 책꽂이의 빈 공간에 몇 권만 더 보태면 끝났다.
남자라는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하루하루 실감하는 중이었다. 희연이가 결혼해서 남자와 함께 살자, 옥상으로 출입하는 사람이 어느새 뚝 끊겼다. 낯선 남자가 희연이를 에워싸는 가위 눌리는 꿈도 더 이상 없었다. 두려움이 걷히자, 안정감이 자리했다.
찬수와 희연이는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데이트하기 위해 감정을 소모하고, 체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백이 되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처럼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지 이전에는 몰랐다. 3번의 연애를 겪으면서도 든든함을 상상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시작한 연애가 결국은 현실적인 계산으로 변해갔다. 이 사람과 어떻게 맞춰나갈까? 고민하게 되었다. 찬수와 연애하면서 희연이는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의 연애와 다르게, 계산이 되지 않았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계산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인연이라 하는 걸까. 그렇다고 단박에 결혼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찬수라면 오래도록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대는 바야흐로 여자도 혼자 살 수 있는 비혼 시대로 변화하고 있었다. 결혼이 아니더라도 이성과 관계 맺는 것은 가능하다고 희연이는 생각했다. 과거의 생각을 떠올리자, 희연이는 설핏 웃음이 삐져나왔다. 자신의 결혼만은 분명 엄마와는 달라보였다. 맞선을 보고 사랑도 없이 결혼한 엄마와는 어떻게 보아도 다른 것이다. 찬수와의 사랑은 계산이 끼어들 틈이 없는 진실함이 있었다고 굳게 믿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날, 옥상은 더 없이 로맨택한 장소가 되어주었다. 이러려고 옥탑방에 산다고, 희연이와 찬수는 맥주잔을 짠~ 하고 부딪혔다.
3년간 사귀면서도 찬수가 만든 음식을 맛볼 기회는 많이 없었다. 찬수는 곧잘 허세를 부리곤 했다.
“내가 자취할 적에 내 밥맛 보려고 자취방 앞에서 후배들이 줄을 섰었어. 이래뵈도 내가 흑석동의 최 셰프였다고!”
찬수의 성은 ‘최’씨였다. 그 성을 따서 최셰프로 불렸다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넘겼다. 데이트를 하다보면 남자가 하는 말의 많은 부분은 확인할 수 없는 거짓말이 많았다. 희연이는 찬수 이전에 3번의 연애를 경험하며 남자를 모두 안다,는 자만감에 빠져 찬수를 평가하고 있었다. 찬수의 허세가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집에서 먹는 밥과 반찬을 뚝딱 만들어냈다. 시장에서 구입한 몇 안 되는 채소와 음식 재료로 만들어내는 그 조합을 희연이는 넋을 빼고 구경하곤 했다. 요리를 하는 찬수는 음식철학을 곧잘 설파하곤 했다.
“음식이란 말이지, 첫째도 마음이고, 둘째도 마음이고, 셋째도 마음이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결정되는 거지. 신선한 채소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채소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도 일어나게 되어 있어. 그게 사랑의 힘이야.”
밥상을 앞에 두고 사랑의 힘을 설파하는 찬수는 의기양양했다. 희연이는 밥상에서 숙연해졌다. 정말 사랑의 힘인지, 음식의 맛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보다, 더 맛났다. 냉장고에서 잊혀가는 음식 재료를 꺼내서 찬수의 손만 거치면 그럴듯한 음식이 되어 밥상에 올려졌다. 희연이는 지금까지 음식 하는 즐거움은 경험하지 못했다. 부지런함이기도 했지만, 결혼하면 죽도록 할 일을 어려서부터 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엄마 한 씨의 신조였다. 한 씨는 매일 아이들이 알아서 먹을 수 있도록 저녁상까지 차려서 준비했다. 비록 변변한 반찬이 없는 찌개 하나여도, 희연이의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금요일 마감일을 제외하고 찬수는 일찍 퇴근했다. 그동안은 사무실에서 기거하며 음식 하는 재미를 살릴 수가 없었다. 방 하나도 없이 사는 주제에 주방 살림은 욕심이었다. 매끼 밖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뿐, 먹고 나면 이상하게 허했다. 유명한 맛집에 줄을 서서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을 느낄 때에도 그 허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었다. 찬수는 알고 있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 ‘사랑’은 없다는 것을. 돈을 받고 판매하는 음식에 사랑까지 기대하기에는 더 없는 욕심이었다. 먹을수록 채워지지 않는 허함에 언제나 집밥을 그리워하곤 했다. 자취방에서 밥을 하며 후배들 앞에서 떵떵거리던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사먹는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