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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집을 닮아간다

결혼이라는 강을 건너_7

by 홍시

5개월 차에 접어들자 거짓말처럼 입덧이 사라졌다. 희연이는 오른손을 아랫배에 얹고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려본다.


“솔아~ 나는 네 엄마야. 여기서 잘 지내는 거지.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야. 엄마는 비 냄새를 좋아해. 땅을 튀기면서 풍기는 그 젖은 냄새가 난 좋은데, 너는 어때?”


언제부터인지 희연이는 태명으로 지은 ‘솔’과 대화를 나누는 버릇이 생겼다. 좋으면 좋은 것을, 힘들면 힘든 것을, 그렇게 작은 생명과 함께 나누었다. 첫 임신 소식을 듣고 걱정했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자신의 몸에서 생명이 자라는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려 애썼다. 배가 조금 부른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임산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자궁 안에서 점점 자라는 솔이의 태동도 아직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인지했다. 한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희연이가 임신의 즐거움을 하루하루 만끽하는 것과 달리 찬수는 본격적인 집구하기로 분주했다. 아차산과는 이별을 고하고, 대학교 선배이자, 가장 친한 친구 같은 황 선배가 살고 있는 봉천동에서 집을 찾았다. 황 선배와 가까이 있으면 마음부터 놓였다. 언제든 불러서 술 마셔야지, 음흉한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직장과도 조금은 가까워졌다. 방 2개의 다세대주택 2층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전세가 거의 없었다. 월세 보다는 장기적으로 전세가 유리했다. 신혼부부에게는 나름 혜택이 많았다. 최대한 누리기로 했다.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모자라는 것은 지인들에게 빌리기로 했다.


대충 집을 찜해두고, 희연이와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했다. 봉천동은 처음이었다. 산을 깎아서 지은 듯 보였다. 층층으로 위로 솟아있는 데다가 다닥다닥 틈도 없이 붙어있는 집들을 보노라니, 희연이는 입이 떡 벌어졌다. 서울 하늘아래 대규모의 산동네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가파른 경사를 조금 오르니 선선한 날씨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아직은 배가 부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다독이며, 찬수가 안내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4층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의 다세대 주택이었다. 근방의 집들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비슷비슷한 형태였다. 찬수는 자랑스럽게 희연이에게 그 집을 소개했다.


“요즘 전세가 잘 없는데, 황 선배가 물어 물어서 찾아줬어. 방도 2개니까, 우리한테 넉넉해. 그리고 비장의 무기는 바로바로, 주변에 산이 있다는 거야. 네가 산이 주변에 있는 걸 좋아하잖아. 여기도 5분만 걸어가면 동네 뒷산이 있어. 거기로 산책도 가고, 운동도 가면 좋을 것 같아. 아차, 골목으로 빠져나가면 마을버스가 수시로 다녀. 여기가 높으니까 걷는 것보다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을 거야. 한 달 뒤에 집 비워준다고 하니까, 한 번 봐봐.”


희연이는 안방인 듯 보이는 커다랗고 반듯하게 네모진 방 하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없는 형편에 신식 건물을 원한 것은 아니었으니, 집을 구한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방 하나에 가득했다. 그 점이 참 맘에 들었다. 옥탑방을 선택했던 것처럼 햇볕이 들어오는 집, 그거면 됐다 싶었다. 발품을 팔고 인맥을 동원해 전셋집을 구한 찬수에게 희연이는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추켜세웠다. 그대로 집을 나가면 성의 없어 보일까봐, 주방의 수전도 내려 보고 화장실 변기도 내려 보았다. 세입자로 살아보니, 수압은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질질질 흐르는 병아리 오줌처럼 약한 수압은 천성이 다정한 사람도 난폭한 사람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짜증이 났고, 짜증이 쌓이면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그 집에서 살아가면 사람은, 집을 닮아간다.


높은 산자락에 위치한 집답지 않게, 수압이 세찼다. 폭포수의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면 가슴속까지 뻥 뚫린다. 막힌 구석구석을 세찬 물살이 모두 뚫어줄 것만 같다. 찬수가 고른 집이 마음에 들었다. 흡족했다. 다른 집은 볼 필요도 없이 당장 계약금을 걸고 계약해야 했다. 여러 집을 전전해보니 좋다,라고 느껴지면 어김없이 계약금을 걸어야했다. 어설프게 말로 ‘찜’해보았자, 소용없다. 하염없이 친절하게만 보이던 부동산 중개업자도 먼저 계약금을 걸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생기면 지금의 친절은 안중에도 없어진다.


문제가 착착 풀리는 것 같아 희연이와 찬수는 마음이 들떴다. 옥탑방이 아닌 방 2개의 집이 생긴다고 생각하자, 아이와의 미래가 불안하지만은 않았다. 어엿한 아빠가 될 준비가 된 것 같아, 찬수의 얼굴은 의기양양했다. 직장을 정리할 마음도 먹고 있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박봉으로 세 식구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대출금은 자초하고 이자는 꼬박꼬박 갚아야 하니 직장을 옮겨야 했다. 퇴직을 하겠다 마음먹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설 참이었다. 메이저 언론사에 지원서도 넣을 작정이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근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희연이는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고, 찬수는 맥주 500cc를 주문해 단숨에 반을 들이켰다. 안주로는 후라이드 치킨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희연이는 찬수의 얼굴을 말꼼히 바라봤다. 이전의 찬수는 온데 간데 없었다. 마냥 어린 동생처럼 느껴지던 그의 얼굴에서 현실에 찌든 표정이 얼핏 비쳤다. 한 남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맘먹을 때부터 남자는 확연히 늙어가는구나, 하고 희연이는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노화가 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기분 좋게 맥주를 들이켜는 이 남자는 겨우 27살이다. 하지만 27살의 젊은이다운 가벼운 무게와 다르게 그는 무거운 책임을 자진해서 맡으려는 것이다. 희연이는 한동안 말없이 오렌지 주스만 들이켰다.


“아저씨, 장롱은 여기에 놓아주세요.”

“책상은 이쪽으로요.”

“그릇은 싱크대에 넣어주세요.”


포장이사의 편리함은 이사의 번거로움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옥탑방의 짐이 많지 않아 새로운 집에 물건을 앉혀놓고도 빈 공백이 많이 보였다. 그 빈 공백이 집을 더 넓게 보이게 했다. 차차 아이의 물건으로 채워지겠지만, 이 빈 공간을 누리고 싶었다. 희연이는 큰 방 창가에 기대어 동네를 내려다봤다. 사람들은 어디를 저리 바쁘게 가는지, 앞으로만 시선을 둔 채 옆이나 뒤로 고개를 옮기지 않았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져서도 한참이나 사람의 행렬은 멈춰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구멍을 찾아 들어갔다. 그 구멍을 파내어보면 개미굴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바글거리는 개미들이 나오듯, 사람들이 들어가는 그 구멍을 파내어보면 닮은꼴을 한 사람들이 수없이 나올 것만 같다. 희연이는 어이없는 자신의 상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버렸다.


이사를 하고, 출퇴근 동선이 다소 어색하긴 해도 이전의 옥탑방이 오랜 옛날의 기억처럼 희미해져갔다. 나름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잊히는 그 얄팍한 정에 몸서리가 쳐졌다. 서울에서 30년째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지만 희연이는 어디에도 정을 깊게 두지 못했다. 세월 따라 옮겨 다닌 집만 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겼고, 열손가락에는 미치지 못했다. 세입자의 서러움이 무엇인지 엄마 한 씨를 보면서 배웠다. 매일 인사를 나누며 사근 거리게 지냈던 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는 인간적인 정을 기대해서는 안됐다. 방세를 올려야 할 때는 가차 없었다. 혹여나 인간적인 정에 기대어 집주인에게 뭔가를 바란다면, 인간적인 실망에 한동안 마음의 상처를 돌보느라 고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한 씨는 갑작스럽게 올려달라는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부리나케 부동산을 찾아 나서야 했다. 더 작은 집으로 가야 할 때도 있었고, 반 지하로 가야할 때도 있었고, 희연이가 사춘기가 될 즈음에야 비로소 방 2개의 집에 들어가 살 수 있었다.


한 번도 세입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한 씨는 벌이가 없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도 겸했다. 시계 부품 공장에서 야근까지 일해 번 돈을 알뜰살뜰 모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였다. 통장에 모여지는 돈은 없었다. 그나마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를 들어 목돈을 만질 수 있을 때는 희연이의 사립대학교 등록금을 대기 바빴다. 빚이라면 치를 떨던 한 씨였다. 심약한 성정을 지닌 한 씨는 소액 대출에도 벌벌 떨었다. 빚을 갚을 시기를 놓쳐 독촉전화가 오면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없는 살림에도 빚이 없다는 게 한 씨의 자부심이고, 살아가는 희망이었다.


어릴 때부터 체화된 체념 때문인지, 희연이는 집에 대한 소유욕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세입자의 신세였고, 지금도 세입자로 지낸다. 당연한 일이었다. 욕망이 거세당한 것처럼 세입자가 아닌 집 주인의 자리는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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