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강을 건너_10
“돌잔치는 우리 결혼식처럼 간소하게 했으면 좋겠어.”
희연이가 찬수에게 말을 건넸다. 찬수는 누구보다 희연이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그래, 주변의 괜찮은 식당에서 양가 부모님만 초대해서 조촐하게 하자.”
하룻밤 숙면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지난한 육아의 나날들이 먼 옛날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100일을 전후해서 겪었던 아토피는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많은 호전을 보였다. 2시간 간격으로 간지러워하던 것이 3시간, 5시간으로 늘어났다. 간지러워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가니 솔이는 밤중에 푹 자기도 했다. 그제야 희연이도 함께 숙면을 하게 되었다. 얼마만의 일인가. 솔이를 키운 지 반년을 채우고서야 간신히 한 밤을 꼬박 잠들 수 있었다. 숙면 뒤에 찾아오는 아침의 상쾌함이 생소했다. 늘 비몽사몽으로 아침을 맞았던 지난 날. 부스스한 얼굴로 남편의 출근을 간신히 배웅하며 거울도 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동동거렸다. 솔이에게 먹이기 위해 하얀 죽을 쑤고, 기저귀를 빨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해서 이불을 털어내고, 청소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에서 급하게 반찬만 꺼내 희연이는 아침 식사를 했다.
솔이의 아토피도 점차 호전을 보이고, 알바를 했던 주연이도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냈다. 학습지 교사를 시작한 것이다. 희연이는 처음에는 말렸다.
“너무 고생스럽지 않겠어. 매일 집집마다 찾아다녀야 하는데, 여기는 아파트 단지도 아니어서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차도 없이 뚜벅이로 다니려면 힘들텐데.”
“힘들겠지. 근데 뭐라도 시작해보고 싶어. 카페 알바로는 밥벌이도 되지 않고 내 적성에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희연이는 생각보다 철이 일찍 든 것만 같은 주연이가 기특하게 보였다. 여러모로 주연이의 덕을 보았던 것이다. 솔이는 주연이를 엄마처럼 잘 따랐다. 덕분에 희연이는 숨통을 틀 수 있었다. 밝은 에너지를 가진 주연이 때문에 희연이는 산후우울증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희연이는 주연이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주연이는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이 주연이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연이도 아침 일찍 출근을 하면, 희연이와 솔이 단 둘이 집안에 남는다. 아토피가 많이 호전되긴 했어도 먹거리를 조심해야 했다.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유제품을 먹고 나서는 여지없이 빨간 반점이 올라와 역시나 신경질적으로 긁어댔다. 그러니, 어린이집에 보내겠다는 계획도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 찾아간 희연이는 아토피 관련 책과 음식 관련한 책을 빌렸다. 솔이는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갔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아님을 깨달은 이후부터 몸의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희연이의 몸부터 돌보게 되었다. 찬수가 해 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것이 언제적 일인지 가물가물해졌다.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진지하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희연이는 영락없는 주부였다. 솔이를 위한, 찬수를 위한, 주연이를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신선한 음식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트에 가고, 구하기 어려운 식자재는 온라인몰을 활용했다. 빵과 아이스크림, 요거트 등 유제품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희연이는 한 순간에 습관이 바뀌었다. 솔이가 아니었다면,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을까. 희연이는 인스턴트 음식을 최대한 차단했다. 처음에는 빵과 아이스크림을 무조건 먹지 않았다. 모유수유를 하기에 솔이가 먹을 수 없다면 희연이도 먹을 수 없었다. 모유수유를 중단하고서도 희연이는 솔이와 똑같이 음식을 조절했다. 먹거리를 동일시하고, 첨가물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철저하게 단속했다.
“찬수야, 이거 먹어봐. 내가 만든 케찹이야.”
“케찹을 만든다고?”
“응, 시중 케찹은 첨가물이 있어 솔이가 먹을 수가 없어서 내가 만들었어.”
“블로그 찾아보면 다 나와.”
음식은 파고 들면 들수록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미 많은 정보들이 공유되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레시피만 잘 이해하면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건강한 음식, 건강한 몸에 대한 관심이 솔이를 통해 무르익어갔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부가 희연이의 정신적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가끔 희연이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안부 전화를 하곤 했다.
“선배, 이제 완전히 애 키우는 엄마 된 거에요?”
“응, 엄마 노릇도 할 만해. 재밌는걸.”
“워킹맘으로 살겠다던, 울 선배 어디갔어요!”
“내가 그랬던가~”
희연이의 머릿속에는 ‘워킹맘’이란 단어는 지워졌다. 직장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생활이 점점 익숙해져갔다. 상사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기 위해서 맘 졸였던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일상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결코 만만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엄마로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영역이 있었다. 워킹맘으로 살겠다고 외쳐대던 철모르던 젊은 치기의 희연이를 지금의 희연이는 웃으며 대할 수 있었다. 그때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미래의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희연이는 알 수 없었고, 모를 때 외쳐대던 젊은 치기를 희연이는 귀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솔이 엄마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기로 했다. 그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었다. 일찌감치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짊어지겠다고 나섰던 찬수의 판단은 옳았다. 메이저 언론사로의 이직은 요원했다. 쟁쟁한 경쟁자를 이길 수 없었다. 현실을 마주하고 풀이 죽어 있던 찬수를 희연이는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꼭 메이저 언론사가 아니어도 괜찮아. 난 네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어. 길바닥에 나앉는 것도 무섭진 않아. 하지만 꿈이 없는 얼굴을 보는 것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희연이의 위로에 찬수는 의아했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국은 가장으로 인정받고 싶은 찬수의 욕망이었다. 그 욕망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솔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연이의 말을 듣다보면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메이저 언론사로 가려던 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는 되었다. 결론은 아니었다.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라는 명함이 탐났다. 부모님이 좋아할 직장이었고, 친구들과 선후배들 누구나 인정하는 직장이었다. 그 인정에 목이 말랐다.
찬수는 안 되는 일에 힘을 빼기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 메이저는 아니지만, 이전부터 오라던 신문사가 있었다. 누구나 알만한 메이저는 아니지만 급여가 나쁘지 않았다. 과거 직장에 비하면 훨씬 좋았다. 좋게 말하면 스카웃이니 나름 인정도 받는 것 같았다. 빠른 결정을 내리고, 급하게 이직을 했다.
갈팡질팡이지만 제각기 역할을 찾아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찬수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았고, 희연이는 전업주부로 가족을 돌봤고, 주연이는 학습지 교사로 서울에서 본격적인 사회인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솔이는 시기에 맞춰 무럭무럭 자라고, 아프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며 걸음마를 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