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강을 건너_9
솔이가 희연이의 자궁 속을 빠져나왔다. 탯줄이 붙은 채로 좁은 산도를 하얀 점액질에 둘러싸여 미끄러졌다. 인간의 형상이긴 한데, 아직 완전체는 아닌 것 같다. 너무 여리고 작아서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희연이의 몸은 엄마라고 하기에는 부자연스러웠다.
100일쯤 되자, 희연이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녀린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어떻게 얼래고 달래야 하는지 습득해갔다. 솔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생’ 정신이 장착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상투적인 말이 전혀 상투적이지 않았다. 솔이가 웃으면 따라 웃게 되고, 솔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면 희연이도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너와 나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핏줄의 연을 몸소 실감하며 몸의 극적인 변화도 찾아왔다. 관절이 모두 열린 후, 채 닫히지 않아 뼈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찬바람이 극도로 싫어지고, 모유수유 때문인지 살이 많이 빠쪘다. 먹어도 먹어도 살로 가지 못하고 젖을 생산하는 데 쓰였다. 두 달이 지나고, 한 달간의 휴가가 남았다.
출산휴가를 마치면 직장에 복귀할 계획이었다. 아직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잡지사 일이란 게 ‘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희연이는 이대로 집에서 더 머물다가는 ‘감’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이는 당분간은 도우미 이모에게 부탁하고, 돌이 지나면 바로 영아 어린이집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아플 때는, 그때는 어떻게든 되겠지. 더 이상의 명확한 해결방법은 딱히 없었다. 다행이라면 주연이가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었다. 주연이에게도 기댈 요량이었다. 주연이는 새벽에 잠들지 못하는 솔이를 희연이 대신 안아서 어르고 달래주곤 했다.
출근을 열흘 앞두고, 솔이의 얼굴에 울긋불긋 반점이 돋아났다. 생후 얼마 되지 않아 태열기 때문에 붉은 꽃이 피었다가 이내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낌새가 심상치 않다. 얼굴의 붉은 반점이 가슴으로, 팔로, 다리로 번지고 있었다. 소아과에도 가보았지만, 신생아가 흔히 겪는 태열일 수 있다고 지켜보자고 한다. 솔이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묻어 희연이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솔이의 손은 붉은 반점의 피부를 긁어대고 있었다. 엷은 피부는 그대로 벗겨져 핏자국이 생겼고, 염증이 생기면서 수포가 생겼다. 피부과에 찾아가 의사에게 아토피라는 말을 들었다.
“아토피가 좀 심한데요. 너무 어려서 연고 사용은 아주 조금만 사용해야 해요. 아토피는 쉽게 치료되진 않아요. 젖을 먹으니 엄마가 먹는 음식이 그대로 영향을 끼쳐요. 인스턴트 음식이나 유제품은 자제하셔야 합니다. 집안에 진드기가 없는지 확인하고, 수시로 청소도 자주 해주세요.”
솔이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으로 솔이의 손은 자꾸 얼굴로 향했지만, 긁지 못하도록 희연이는 두 손을 부여잡고 꼭 안았다. 솔이는 긁지 못할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희연이도 날카로워졌다. 젖을 물려 간신히 잠이 들곤 했다. 희연이는 옆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탓이야’라고 읊조렸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찬수는 눈이 퉁퉁 부어있는 희연이를 보았다. 찬수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퇴근을 하면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솔이의 아토피가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손수 음식을 하고, 솔이의 목욕을 책임졌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축복이었지만, 키우는 것은 고행이었다. 한 걸음 내딛으면 또 한 걸음이 기다리며 부드러운 흙길일 수도 있고, 푹푹 빠지는 늪일 수도 있었다. 늪에 빠지면 또 한 걸음이 버거운 일이 되었다. 지금의 시기가 그랬다. 희연이도 찬수도 늪에 빠졌다.
출근일이 임박해서야 희연이는 상사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며 육아휴직을 요청했다. 상사는 일말의 고려도 없이 “안 됩니다, 정 안되겠으면 퇴사하세요”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노동부에 신고를 할까, 하다가 더 이상의 노력을 감당할 만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력이 없었다. 정신을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솔이는 두 시간 간격으로 간지러워했다. 잠시 한 눈을 팔면 어떻게든 손을 뻗어 긁어댔다. 손톱으로 긁힌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 온몸에 누런 딱지가 붙었고, 이불 위로는 비듬이 떨어진 자국처럼 부스스 딱지들이 내려앉았다. 희연이는 아이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 눈물을 쏟아냈다.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새벽에도 솔이는 2시간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짜증 섞인 톤으로 울어댔다. 손으로 긁을 수 없도록 하니, 짜증 섞인 울음은 더 날카로워져 희연이의 가슴팍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조용한 동네에서 새벽 아이의 울음소리는 주변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든 울음을 막아야 했다. 그 유일한 방법은 희연이의 퉁퉁 불어 땅땅해진 젖꼭지를 물리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밤새 물린 채 잠이 들었다.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희연이의 젖꼭지는 흐물흐물해져갔다. 살짝만 건드려도 소스라치게 따가웠다.
방법이 없었다. 희연이는 매끼 주억주억 먹어댔지만, 잠을 자지 못하고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 점점 야위었다. 잠들지 못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유일한 한 가지 소원이 맘 편히 숙면을 취해보는 것이었다. 하룻밤만 푹 잘 수 있어도, 생기가 돋아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룻밤도 솔이의 곁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 그 새벽, 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막을 방법은 젖이 유일했다.
“언니, 내가 새벽에 솔이 안아서 달래 볼테니까. 조금이라도 더 자. 이러다가 언니 병나겠어. 엄마가 병이 나면 안 되잖아. 나도 아르바이트 시간을 좀 줄여볼게. 아침에는 내가 좀 더 신경 쓸테니, 언니는 밥 좀 잘 먹고 기운 좀 차려봐. 거울을 봐봐. 언니 얼굴은 혈색이 하나도 없어. 좀비 같아. 내가 입맛 돌게 맛난 것도 좀 만들어볼게.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정말 몰랐어.”
주연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대기업을 바란 것도 아니고, 중소기업에 몇 군데 지원서를 냈지만 지방대학이라는 것만으로도 서류면접에서 탈락되곤 했다. 특출난 기술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던 터라 직장 구하기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젊기에 집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일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용돈벌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나마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사정을 뻔히 아는 오빠에게 손 내밀기에는 염치가 있어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첫 조카가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더 강해졌다. 옆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매일같이 눈이 퉁퉁 부어 있는 언니를 보면 짠했다. 주연이는 아이를 키우는 일의 만만치 않음을 눈앞에서 똑똑히 목도하는 중이었다.
희연이가 유일하게 햇빛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방의 창문 덕이었다.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방 안으로 비추는 햇살 덕분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찬수는 아침 일찍 출근을 했고, 솔이와 주연이가 남았다.
“주연아, 네가 없었으면 난 벌써 산후우울증이 되었을 거야. 가끔 뉴스에서 비정한 엄마 이야기가 나오잖아. 아이를 창문 밖으로…. 뭐 저런 미친년이 있나, 이해할 수 없었거든. 근데 내 마음이 딱 그랬어. 네가 없었으면 나도 저런 미친년이 되었을거야. 딴 사람 이야기가 아니었어. 바로 나였어. 그걸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나서 멈춰지질 않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솔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희연이는 주연이에게 말을 건네면서 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샘은 마르지도 않는지, 매일 쏟아내도 멈춰지질 않았다. 한 번 쏟아낸 눈물은 솔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그쳤다. 그래도 솔이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 희연이는 엄마가 되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입술을 꾹 물었다.
눈물이 범벅이 된 하루 하루를 지내며 희연이는 직장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워킹맘으로 살려던 그녀의 미래는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가 떠올라져 희연이는 한참을 몰래 울었다. 희연이는 간신히 잠든 솔이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