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나 3월이 왔다. 춘삼월이 되려면 한 달은 더 지나야 하지만 이미 마음은 봄이다. 지난 두 달 꼬박 아이의 겨울 방학을 함께 했고, 3월이 어서 오길 바랐다. 엄마들이 잠시나마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소중한 3월을 나도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린 만큼 학교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잠시 아이를 맡아 배움과 사랑을 주는 담임 선생님의 존재도 감사하게 여겨진다.
올해는 어떤 선생님이 아이에게 배움과 사랑을 주실까. 올해는 어떤 아이들이 이 배움과 사랑의 공간에서 아이와 함께 지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찰나, 순간이지만 걱정스러움이 감사함을 슬며시 덧씌우려 한다. 태생적인 불안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어본다. 겨울 내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겼던 학교의 존재를, 미지의 담임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떠올려본다.
3월이 되고 며칠이 지났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새 학년이지만 이미 적응은 끝나 보인다. 아이는 올해 6학년. 초등학교에서 최고 학년이 되었다. 아이에게 최고 학년은 최고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매해 3월 개학 전날 밤은 설렘보다 두려움으로 잠을 설치곤 한다. 아이도 나도. 아직 수면 독립이 안된 외동아이의 새 학기 긴장감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잠을 자기 전에도 잠을 자면서도 아이의 긴장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최고 학년이 되는 올해는 다행히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커 보인다. 긴장감의 농도가 좀 옅어진 듯 보인다. 개학 첫날 아이는 집 현관문에서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소중한 학교를 향해서.
어제는 3월 6일 목요일.
날짜를 꼭 기록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아이의 일기장에도 이날이 자신의 인생에서 꽤 중요한 날로 기록되어 있는 듯하다. 아이의 일기장을 넘겨보지 못했으나, 아이는 일기의 제목만을 내게 읊었다.
"사춘기의 시작날"
그 단어가 입에 올려지는 날이 올지 몰랐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내 일이 아닐 줄 알았다. '아이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가 만나다'라는 말과 글의 함축적 의미를 알고 싶지 않아 했다. 아이의 사춘기의 아이라는 범주에, 엄마의 갱년기의 엄마라는 범주에 아이와 내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성적표는 아이의 혹독한 사춘기로 매겨진다'라는 말에 내심 우월한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아니겠지, 내 아이는 아니겠지. 내가 어떻게 했는데, 네가 어떤 아이인데...
이날 수학 학원에서 막 돌아온 아이는 허기를 채우며 말했다.
"엄마, 나 사춘긴가? 자꾸 짜증이 나네"
항상 밝게 빛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미간에 한껏 주름이 한 겹 채워져 있었다. 순간 업무에 시달려 미간이 찌푸려진 남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날 닮아보였던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남편을 닮아 보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들아, 배고파서 그런 거야. 배고파서. 엄마도 배고프면 짜증 나고 그래"
알면서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최근 아이의 밝은 미소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모른척하고 싶었다. 나의 태생적인 불안함이 회피본능과 짝짜꿍해 아이의 사춘기를 외면하고 싶었다. 그 무서운 단어를 한 번도 내 입으로 꺼낸 적 없는 이 엄마는 아이 입에서 꺼내지는 그 무서운 단어에서 멀찌감치 도망가고 싶었다.
평생 입에 올리지 않은 말은 평생 우리 삶에서 존재감 1도 내뿜지 못할 것처럼 여기며 지냈다. 남들이 사춘기를 입에 올릴 때마다 옆에 있는 내 아이의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런 무서운 말을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다른 좋은 말들도 다 입에 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는데 굳이 왜 그런 무서운 말을. 알면 입에 담게 되고 담게 되면 느끼게 되고 느끼면... 느끼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권리인 줄 알고... 이 엄마의 태생적 불안함은 아이의 말 한마디에 거침없이 거대해진다.
그날 저녁 내내 아이의 낯빛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실은 내 눈에 자꾸만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스스로 사춘기의 시작을 엄마에게 선포한 것이고, 엄마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자꾸만 살핀다. 다른 곳을 보는 척하면서 나는 아이의 표정과 아이의 행동을 살핀다. '내 아들이 진짜, 진짜 사춘기라고?! 설마...'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왔던 것을 하나씩 하게 되는 것이 아이를 기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절대 내 입에 담지 않으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의 '봄을 생각하는 시기'가 아이 입으로 먼저 내뱉어지는 순간, 나는 이미 이 순간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봄을 생각하는 이 시기가 지나 멋진 어른이 되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나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서 따스한 봄이 오기를 기다린 지난겨울처럼, 우리 둘 함께 지내온 수많은 겨울들처럼, 아이의 봄을 생각하는 시기가 그리 춥고 혹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진짜?? 정말?? 진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