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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Dec 04. 2023

'음주가무' 속에서 피어나는 행복

모두가 행복한 문화를 가정에서부터 만들어볼까요?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프랑스(보르도 와인)? 오사카(하이볼)? 아니면 미쿡(샤뮤엘 아담스 맥주)?"


금요일 저녁이면 우리집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열린다. 이번 한 주도 잘 살아낸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거행되는 소박한 ‘음주가무’가 그것이다. 서로의 유리잔을 맞부딪치며 나는 영롱한 소리는 이 파티의 시작을 알린다. 한국인의 정서에 ‘노래’가 빠지면 심심하지. 곧 음악 청취용으로만 쓰이는 스마트패드를 꺼내 남편은 노래를 고른다. 항시 노래를 흥얼거리는 남편은 그만큼 노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아이와 나는 무언의 동의로 그에게 매번 노래 선택권을 넘긴다. 대부분 90년대 노래들. 내 아이의 현재 최애곡은 조장혁의 ‘중독된 사랑.’ 부모는 곧 환경이라더니 정말인가 보다. 자극적인 배달음식과 알딸딸함을 선사해 줄 그날의 술 그리고 선곡된 90년대 노래.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다. 아이가 마시는 청량감이 가득한 탄산수와 달달한 풍미가 가득한 와인이 한 잔 두 잔 사라진다. 말을 주고받다 키워진 노랫소리를 줄여보기도 하고, 다시 노랫소리를 키워 따라 부르기도 한다.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자동으로 소리가 키워지고, 키워진 노랫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 따라 부르는 것은 순차적인 순리. 아이는 아빠의 애끓는 사랑 노래를 지켜보며 껄껄 넘어간다. 그렇게 매주 금요일 저녁, 우리들의 소박한 가족 문화가 진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음주가무 문화가 우리 집만의 가족문화는 아닐 것이다. 한국인에게 음주가무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필수 유전자로 세포에 진하게 존재하는 듯하니. 예부터 노동의 강도가 높을수록, 노동 후 음주가무는 불가피한 필수적인 보상이기도 하다. 기분 좋게 한잔 걸치고 젓가락 박자에 맞춰 한 곡조 뽑아내며 하루의 시름을 잊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가족 문화로 정착한 ‘금요 음주가무 문화’를 통해 세대를 거치며 아이에게까지 이 유전자를 물려주고 있고, 아이는 이 함께한 시간들 속에서 삶을 향유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체득하고 있다.


문화라는 것이 사회 속에서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무형의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문화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가 지닌 개인의 정체성이 다시 그 사회의 문화를 더 공고히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결의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문화라는 것이 무형의 유동적인 것이고, 그래서 때로는 시대상을 반영하며 모습을 달리해야 할 때가 있다. 기존의 문화를 더 공고히 하는 일과 시대에 따라 기존과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찌 됐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몫일 것이다. 변화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순응할 수밖에 없거나, 그것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려 하거나, 아니면 무념무상의 상태로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모두 구성원들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알게 모르게 체득한 하나의 문화를 변화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공고하게 자리 잡은 그 거대한 문화 앞에서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했던 한 가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남편과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 간 동네의 한 국민학교에서 그를 만났고, 우리는 짝꿍이 되었고 세월이 꽤 흘러 부부가 되었다. 양가 부모님은 세월이 흘러도 그 동네를 고수하셨고, 결혼 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양가 부모님 댁을 편하게 오갔다. 결혼 후 첫 명절, 시부모님 차 안에서 느꼈던 그때의 그 감정이 가끔 선연히 어젯밤 꿈처럼 고스란히 다가올 때가 있다. 여전히 미숙한 나로 인한 것이라 여겨보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때의 나에게 애처로움이 느껴져 토닥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명절 이틀 전, 동대구 기차역에서부터 시댁까지 가는 길이 하염없이 길게 느껴졌던 건, 새로 생긴 가족에 대한 어색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5분 거리에 있는 나의 집을 슬쩍 지나칠 때,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부모님의 얼굴이 슬며시 그려질 때, 그리고 차 안 그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언급하지 않았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이방인이었다. 차마 그 이방인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집이었던 곳을 바라볼 수 없었고, 애써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새로운 집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십 년이 흘렀다. 그 좁은 차 안에서 이방인이라고 느꼈던 나는 더 이상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고향에 도착하면 으레 아이의 친조부모님 댁에 갔다가 며칠 후 아이의 외갓집으로 이동한다. 가끔은 상황에 따라 친정집을 먼저 들려야 할 때도 있다. 들리는 순서가 뭐가 중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시댁부터 들리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여전히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문화, 즉 부계 중심으로 형성된 뿌리 깊은 가부장제 문화가 우리나라에 존재한다. 명절에는 시댁을 먼저 방문하고 여성이 제사를 준비하는 관례가 일반적인 유교 문화. 요즘은 시대가 변해 여성의 사회 진출 빈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결혼 제도와 유지 또한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를 이을 것인가 말 것인가 논의조차 무의미해지는 요즘, 명절에 양가 중 어디를 먼저 들릴 것인가는 너무나 사소하게 느껴진다. 십 년이 흐르는 동안, 내 아이는 왜 외갓집을 먼저 가지 않냐고 묻기도 했고, 왜 할머니와 엄마만 명절에 일을 하느냐 묻기도 했다. 아이를 포함해 남자들이 제사상에 절을 하는 동안, 아이는 부엌에 서있는 엄마를 슬쩍 곁눈질하기도 했다. 십 년이 지나니 아이는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았다. 내가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라 여기며 살아온 시절 동안, 사실은 뿌리 깊은 거대한 문화에 용기 내 저항할 수 없었던 시절 동안, 내 아이는 이 문화에 자연스레 스며들며 이 모든 관례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 세대를 거치며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필요한 하나의 문화를 어쩌면 내가 고스란히 답습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결과가 되어 있었다.      


한국인에게는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음주가무 문화’가 있고, 개인적으로는 세대를 거쳐 그 문화를 내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있다. 엄마 아빠의 느슨해진 신경 세포를 마주하며 아이는 함께 노래하고 함께 즐기며 우리의 문화를 만나고 있다. 아이가 커서 가정을 이루고 그다음 세대에게도 이 유쾌한 문화를 전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이번 한 주도 그날을 기다린다. 반면에 명절이면 예민해지는 엄마의 마음 세포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 우리 부부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이의 조부모님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앞으로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가부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한 어감을 점차 희석시켜,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온 의례들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우리 모두가 수용하는 포용적인 문화가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누구나가 행복한 가족 문화를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풍토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새로운 문화가 아닐까. 최소한의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부터, 그리고 그 구성원인 나부터 새롭게 변모하는 행복한 문화를 위해,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 금요일마다 ‘음주가무 가족 문화’ 속에서 진하게 아주 진하게 내달려보고자 한다. 한국인의 음주가무 유전자를 진하게 물려주신 나의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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