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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Nov 21. 2023

다 전하지 못한 고마움

가까운 사람에게 당연함을 벗겨내고 고마움을 덧씌우기

바이러스가 온 집안 깊숙이 침투했다. 다행히 아이는 바이러스에 살아남아 씩씩하게 등교하고 있다. 바이러스도 사람을 가리나. 사람을 가리는지 나이를 가리는지, 아니면 친구들과 놀 생각에 아플 겨를 없이 하루가 소중한 아이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건지. 우리 중 면역 최약자인 줄 알았던 아이는 다행히 평소와 다름없이 보인다.      


사실 우리 집 면역 최약자는 따로 있다. 항상 바이러스를 온몸에 덕지덕지 묻혀 들어오는 이. 그만큼 우리 중 외부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는 증거겠지만. 매번 남편이 먼저 시작한다. 그의 흐리멍덩한 눈빛에서부터 나는 감지한다. 올 것이 왔구나.

      

다행히 이번 바이러스는 그에게 그리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는 두통뿐이라는 말을 하며 가볍게 두통약 하나를 집어삼키곤 했다. 근데 몸이 좀 무겁네, 라는 말을 덧붙이며. 반면에 나는 병원에 다녀온 그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다 결국 내 차례가 되었다. 거센 바람이 내 온몸을 휘감아 몸을 기역자로 만들며 고꾸라지게 만든 것처럼 주체할 수 없는 기침이 쉴 새 없이 나를 강타했다.     


보다 못한 두통뿐인 남편은 폐 질환 명의를 찾아가 보자 했다. 이러다 사람 죽겠다는 말을 하며. 내가 보기엔 둘 다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결국 집에서 30분 거리의 폐 질환 전문 내과에 내원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대학병원 30년 근무 감사패가 내 시선을 끌었다. 깊고 그윽한 두 눈과 조곤조곤 편안하게 울리는 저음은 감사패보다 더한 신뢰감을 주었다. 기침이 심해서 멀리서 부러 찾아왔어요, 혹여나 걱정되는 마음에 덧붙여 말했다. 곧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고, 명의는 눈에 희미한 주름을 만들며 나에게 웃음 지어 보인다.      


“다행히 폐에는 이상이 없네요.”

“푹 쉬셔야겠네요.”      


명의의 그 말 덕분에 나는 이내 모든 의심을 접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이미 기침이 나은 듯했으니. 아니 감사패를 본 순간인가 아니면 신뢰감 묻어있는 눈빛과 육성 때문인가. 나는 순간 화색이 돌며 ”감사합니다”를 전했다. 최대한 목젖을 눌러가며, 기침이 새어 나오지 않게. 그리고 여느 “감사합니다” 와는 다르게 온 마음으로 나의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지나가며 대충 얼버무리는 예의상 주고받는 그런 감사함 말고, 나의 불안과 의심을 순식간에 희석해주는 당신의 아우라에 대한 감사함에 대해서. 진실로 감사함을 느끼는 내 마음이 나의 몸을 나의 바이러스를 잠재웠으니.          


거침없이 거세게 휘몰아쳐 오던 기침이 하루 사이 잠잠해지고 있다. 폐 질환 명의를 찾아간 보람이 있나 보다. 의심을 가라앉게 만들어 준 의사의 말 한마디에 대한 신뢰와 감사, 이미 내 몸속 바이러스는 감지했다. 여기 더 오래 있을 수 없겠구나, 라고.


그럼에도 증상이 두통뿐인 남편은 나를 대신해 그동안 집안 살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두통뿐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전염력으로 염려하는 회사의 방침 덕분에 며칠 집에 있게 되었다. 회사의 호의에 대한 수혜자는 나, 덕분에 나는 편안히 아플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하고 있었던 일을 그는 며칠 사이 나를 대신해 척척 해냈다. 아이를 등하교시키는 것은 물론, 산더미 같이 쌓여있던 씻겨달라 아우성치던 그릇들을 이내 뽀얀 얼굴로 만들었다. 건조기 안에 널브러져 있는 빨랫감들이 어느새 착착 제자리를 찾아갔다. 쓰레기통이 매번 말끔히 비워져있는 것은 물론이고.      


약을 먹으려 주방을 서성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파서 서러운데 누워있을 수 없으면 얼마나 더 서글플까. 쉴 새 없는 기침에 온 정신이 팔려 내 옆에서 나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주는 그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느끼지 못했으니 표현은 더더욱 안 했을 것이고. 질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의사의 몫이지만, 그 질병을 안고 있는 사람을 근거리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내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명의의 말 한마디뿐 아니라 옆에서 두통약을 집어삼키면서 내 일을 도맡아 해주는 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한 공간에서 같이 숨 쉬는 관계는 그런 만큼 아쉽게도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어렵다. 아플 때 옆에 있어 주는 사람, 아플 때 내가 편히 누워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아픈데도 두통쯤이야, 하며 주방 장갑을 끼는 사람이 나와 그런 관계일 텐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너와 나 거리감에 따라 고마움을 인지하는 세포가 다르게 작용하는 걸까. 너와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너와 나 사이 모든 일들은 고마움보다 당연함으로 덧씌워지는 걸까. 평소 ‘감사합니다’를 항시 입에 걸치고 다니는 나는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쓰지만, 글쎄 내 사람들에게는 얼마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지. 묻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나. 고마움보다 당연함이 덧씌워진 그만큼 가까운 관계라서. 당연함만 벗겨내면 소중하고 고마운 마음이 쏙 얼굴을 드러낼 것 같은데... 타인에게 애쓰는 노력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 내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가능한 한 자주 남겨보기로 한다. 먼저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주방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간다.      


‘보이는 통증이 보이지 않는 통증을 이겨버려서 미안해, 그리고 묵묵히 설거지, 빨래 개기 같은 내가 그동안 하기 싫어 묵혀두었던 것들을 해치워줘서 고마워. 당신도 아픈데 말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실상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기침 덕분에. 

     

“고마,콜록” “사랑,콜록” “콜록콜록”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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