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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최고의 간호사 선생님

[마음 온도 100°C 따뜻한 간호사 선생님 (완)]

by 쏘야

몇 년 후,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처럼 1형 당뇨병이 찾아왔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병명에 대학병원이라는 처음 가보는 낯선 환경과 수많은 간호사들...

나 홀로 견뎌야 하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거대한 바다에 이리저리 표류하는 돛단배 한 척!'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지?'


고령의 환자들이 대부분인 10 병동에서 나는 가장 나이가 어린 환자였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아, 하지 마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제발, 저 좀 내버려 두시면 안 돼요?"


때로는 쌤들의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병원 밖으로 도망가기도 했고, 간호사 라운딩 시간에는 일부러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제발, 라운딩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학창 시절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된 간호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고,

애써 그 문을 열고 나오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창밖을 보며 슬피 울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목을 휘어 감았다.


아악...!

"아파요!"

'어... 누구지?'

'차미정 선생님이잖아?'

'기...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하시면 안 될까요...?'


"어이구... 이 짜식!"

"이 밤에 혼자 청승맞게 뭐 하고 있어?"

"언니들이 매일 네 걱정을 하느라 일을 못해."


"김쏘야! 언니들 말 좀 잘 들어!"

"언니들이 너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언제까지 계속 언니들이랑 밀당할 거야?"

"김 쏘야님! 이제 그만 좀 튕기세요!"


학창 시절에 있었던 보건교사와 안 좋았던 기억이 여전히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지금 간호사 선생님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데...!'


그동안의 일들을 생각해보니 미정쌤과 다른 간호사 쌤들이 얼마나 잘해줬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쏘야야, 언니가 어제 펜 사러 갔다가 네 생각나서

귀여운 토끼 펜 사 왔어."

"우리 쏘야 미술책 좋아하니?"

"언니가 명화 모음집 갖다 줄게!"


"어이구... 이 지지배! 머리는 산발을 해가지고..."

"여기 앉아봐! 언니가 머리 예쁘게 땋아줄게!"

"쏘야야, 언니가 너 주려고 머리핀 사 왔다!"

"수선생님이 머리 묶어주는 것 영광인 줄 알아!"

"수선생님이 우리 병동 넘버 원이야! 실세!"


생각해보니...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물을 마실 시간도

지어 화장실을 갈 시간도 없는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그동안 내 마음이 닫혀있어서 몰랐다.


"미정쌤, 그런데 쌤도 그렇고 다른 쌤들도

왜 자꾸 저한테 '언니가'라고 해요?"

"쌤들은 '아가씨' , '간호원' , '저기요' , '언니'

이런 말 들으면 화나시잖아요!"


"쏘야야, 네가 막냇동생 같고 귀여워서 그렇지!"

"가루 같이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말랑말랑 만져보고 싶은 아기 피부, 오동통한 젖살까지...!"

"우리 쏘야, 혈관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혈관도 아기 혈관이라 보이질 않네...!"


"여기 병동에 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인데... "

"언니들이 여기서 무슨 재미가 있겠어?"

"언니들 일하느라 힘든데 애교도 좀 부려!"

"예쁜 짓도 해보고...!"


',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내가 내과병동이 아니라 소아병동에 입원한 건가?'


'아니...!'

'그래서, 매번 내 IV주사 테이프에 캐릭터 그림을 그려주고 가는 걸까...?'


"쏘야야, 언니라고 한번 불러봐!"

"그건, 너무 어색해요."

"형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죠...?"

"그럼... 님은요?"


"김쏘야, 너! 짜식! 이리안 와?"

"아... 알았어요. 그럼, 쌤이라고 부를게요!"

"쌤이 저한테 제일 친근한 호칭이에요!"

"그래, 그러면 쌤이라고 불러!"


그때부터 간호사 쌤들과 좋은 기억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 인생 최악의 보건교사와의 일은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혔고, 나는 간호사 쌤들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때로는 먼저 쌤들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쌤들과의 좋은 기억들 덕분에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처음 보는 간호사쌤들 신규쌤과도

학생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나름의 내공을 갖게 되었고, 친한 간호사 쌤들과는 장난도 치는 사이가 되었다.


"쏘야님, 이 수액은 4초에 한 방울..."

"이 수액은 10초에 한 방울 들어가니까..."

"수액 속도 잘 보고 있어요!"

"쌤, 수액 다 들어가면 알아서 잘 잠그시고요!"


"아니, 아니지...!"

"쏘야님이 너무 친숙해서 우리가 자꾸 쌤이라고 부르게 돼요!"

"다른쌤들도 종종 저한테 쌤이라고 불러요."

"쏘야님 우리 세계를 잘 알고 계셔서...!"

"저희도 모르게 야님을 쌤이라고 부른다니까요!"


너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만약,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보건교사와의 악연에서 벗어나지 못해 병원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 같다.

너를 만나고 내 인생에서 잃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내게 좋은 기억 선물해 주었구나...!


*본문에 나온 용어 설명


수간호사 (Head Nurse)

간호사들의 우두머리(수, 首)라는 의미의 직책으로 간호 단위(주로 병동)의 책임자로서 중간관리직


간호사 (Registered Nurse, RN)

공인 등록 간호사라는 뜻으로 한국에서는 일반 ‘간호사’를 의미


학생 간호사(Student Nurse, SN)

주로 대학병원에 실습 나오는 간호대학 3, 4학년 대학생


*자료출처 및 참고자료


https://namu.wiki/w/%EC%88%98%EA%B0%84%ED%98%B8%EC%82%AC


https://ko.m.wikipedia.org/wiki/%EA%B0%84%ED%98%B8%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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