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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 Feb 14. 2019

우리의 여행이 때로는 극기훈련 같을지라도

아이의 시선으로 여행하기



여행은 그 자체가 주는 낭만이 있다. 특히 하와이는 마치 휴가의 대명사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왠지 신나는 기운을 주어 마음이 들썩이곤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경이로운 경치를 가득 담은 빅아일랜드라도, 그 아무리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광경이더라도, 안타깝지만 아이와의 여행은 낭만과는 구만 오천리 정도 떨어진 저기 어딘가에 있었다. 



아이와 여행은 즐겁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니면 실망스럽게도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육아의 어려움들 -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아이의 심리상태,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일, 영원히 불가능해 보이는 나 혼자만의 시간- 계속되었다. 아이는 여행이라고 왠지 평소보다 더 흥분해있는 반면 우리는 안전 여행이라는 사 여행지에 왔으니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한다는 강박을 등에 엎고 쪼그라들어 있다. 라군 풍경이 너무 멋져서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이는 제일 작은 풀장의 모래만 1시간째 퍼 날랐다. 우리 집 앞에도 널린 모래인데! 빨리 라군을 보러 가야 하는데! 애닳은 우리와 상관없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여행의 정의가 "익숙한 것에서 떠남"이라면 아이와의 여행은 너무 익숙한 기분이라 "대체 나는 여기에 무엇을 하러 온 것인가" 혼미 때도 있었다.  하와이가 마법을 부려 육아가 전혀 힘들지 않은 이상향의 상태가 되기를 바랐나 보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나는 한국에서의 육아가 그대로 하와이에 붙여 넣어지는 광경에 꽤나 실망했고 다소 허망했다.



방심하면 여행 자체가 매우 귀찮아지면서 마음 깊숙이 눌려있던 괜히 왔다는 감정이 둥실 떠오르고 이후엔 여지없이 아! 힘들게 온 여행인데 후회나 하고 있다니, 자괴감이 몰려오기 쉽다.  함께 하고 싶어 온 여행에서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치게 둘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시선으로 여행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여행


아이의 입장에서 이 여행은 어떨까. 자고 일어나면 늘 없어져있는 엄마와 아빠였는데 이제는 새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같이 눈을 뜬다. 고개를 돌리면 돌고래가 놀고 있고, 바다라는 것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며 끝없이 펼쳐져있다.  이 자체로 너무 흥분되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쉬지 않고 "여기가 어디야?"라고 묻기도 하고 새로 온 이 곳이 너무 재밌어서 떠나기 싫어 떼를 쓰기도 한다. 아이 입장에선 당장 모래 퍼내기도 재미있으니 저기에 뭐가 있는지까지 마음이 미칠 리 없다. 당장 즐거운 것이 중요한 아이에게 성비 따위가 그 안중에  있을리가. 우리 동네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하고 모든 것이 새롭다. 조용히 밥만 먹기에는 주변에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얌전히 잠을 청하기에는 창밖의 별이 정말 밝다. 그저 비행기 탄다는 생각만 하고 왔는데  이 곳은 왜인지 신난다. 그저 놀랍고 신기하다. 이렇지 않을까?


굳이 무엇을 할 필요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집에서나 외국에서나 육아가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 여행 자체가 즐겁게 다가왔다.  이렇게 체득한  여유는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작용하니 여행으로 부모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아이와의 여행이 힘들다고 후회하거나 자괴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와의 여행이 오로지 낭만 만으로 가득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확실한 거짓말이다. ) 



 

비록 극기 훈련 같은 여행일지라도


프레드릭 베크만의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에선 알츠하이머로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할아버지가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싶은 손자의 손을 꼭 잡고 마음속을 여행하는 데 이 책 가득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감동의 말들이 채워져 있다. 잠든 아이이 귀에 속삭이는 그 말이 마음을 쿵 울렸다.


내가 노아, 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는가 하면,
하늘도 그 마음을 다 담지 못할 거야


비록 흔히 생각하던 여행의 낭만은 없더라도 짧은 순간에 행복할 수 있고 그 순간 내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끼게 되는 게 여행이었다.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는 일, 새들에게 자신이 먹던 바나나를 잘라 내어 주는 일, 라군 깊은 곳에 있는 바다 거북이를 보겠다고 패들보트를 타고 셋이 영차영차 라군 끝까지 가는 일, 별 거 아닌 순간에 마음이 차오를 수 있다.



우리 꼬맹이는 자신이 25살이 되더라도 엄마 아빠와 셋이 여행을 다닐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더랬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녀석! 가자고 해도 안 갈 거면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알아들을 리 없으니 씽긋 웃어주고 말았다. 그러다 이내, 아이가 이렇게 쑥쑥 자라 지금처럼 우리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여행을 할 기회도 생각보다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은 자명했다. 그러니 작은 순간에도 일일이  행복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복닥거리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극기훈련 같은 여행일지라도.



긴 일정 동안 28개월 아이에게 외부음식만 먹이는 것이 우려되어 빅아일랜드와 오아후 모두 힐튼의 콘도형 객실인 힐튼 베케이션 클럽에 있었다. 첫날 마트에 가서 반찬 재료, 쌀, 식용유, 계란, 고기 등을 사 와서 아침마다 해 먹었다. 덕분에 약간의 생활자 기분이 나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하와이에 와서 아침마다 기름 냄새 맡으며 전을 부치고 있으니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매일 아침을 든든히 먹은 덕분에 긴 일정 내내 작은 탈도 안 나고 건강히  잘 놀았지


어느 날 저녁, 주차장에 나가보니 염소 무리가 주차장 옆 풀을 뜯고 있었다.
꽤 넓은  풀장에 돌고래가 산다
바나나를 먹다가 손 위에 올려두면 동네에선 보지 못하던 예쁜 새들이 날아와 노래 부르며 바나나를 먹는다.
우리의 리조트,  힐튼 킹스랜드. 10년 뒤 다시 오자
미국에 왔으니 왠지 영어동요를 불러야 할 것 같은지 유일하게 알고 있는 ABC 노래 열창
빅아일랜드의 대자연
빅아일랜드,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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