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눈이 한 아름 뿌려진다. 오랜만에 내리는 눈이 반갑다. 기나긴 강추위의 끝을 알리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매일 한 조각도 변하지 않던 풍경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눈이 꽤 많이 쌓인다. 눈 덮인 세상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선을 가볍게 지워버린다. 위상수학자라면 비이산위상(indiscrete topology)을, 불교철학자라면 '모든 것이 항구여일(恒久如一)하지 않다'는 공(空)의 진리를 떠올릴 법한 풍경이다.
우리는 왜 눈 덮인 세상을 낭만적이라고 느낄까? 물론 새하얀 눈의 색깔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만약 눈이 새까맸다면, 지금보다는 덜 낭만적이었을 것 같다.) 나는 모든 사물이 하나로 인식되는 시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는 타자와 구분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 풍경이 아주 잠시 동안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엄격히 구분된 다른 존재로서의 자신을 두려워한다.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삶, 남들과 동떨어진 것 같은 내 위치는 무섭다. 누구도 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회의감은 인간을 고독하고 무의미하게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동질성'을 갈망한다. 학교, 회사, 동아리, 기타의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방식으로, 우리는 그 두려움을 극복한다.
그러나 동시에 타자와 완벽히 동질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나 자신으로서의 특질이 없다면, 나의 모든 행위들은 '굳이 나여야만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변해버린다. 내가 다른 누군가와 완벽히 동질적인 존재라면, 하루에 느끼는 수만 가지의 감정들은 그 중 어느 하나도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공장 기계를 돌리는 여느 톱니바퀴와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무언가를 올바르게 작동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톱니바퀴가 나를 앞선다. 기계 수리를 위해 비치된, 작은 서랍 속 나사 더미들이 오히려 더 비슷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구적 동질성' 역시 조금 못마땅하다. 집단에 소속되어 느껴지는 '동질감'은, 그 집단이 영원히 속해있어야 할 무언가가 되는 순간 '감금'으로 변모한다.
그러한 점에서 눈 내린 거리의 모습은 완벽하다. 눈 내린 거리가 선사하는 심상은 '한시적 동질성'이기 때문이다. 즉, 너와 나는 내리는 눈 때문에 아주 잠깐 서로를 구분지을 수 없는 동질한 존재지만, 오늘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잠시 동안만 다르지 않은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각자 속한 집단에서 열의를 가질 수 있는 것 역시, 그 집단이 영구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관계는 언젠간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잠시 동안만 구별되지 않는 나와 같은 서로를 향해, 불필요한 노력을 할 수도, 아낌없는 사랑을 늘어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