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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팔라 Mar 19. 2019

추억은 드라이플라워로

[서사의 분말상자] 2018.6.26.

얼마 전 소중한 시간들을 마무리 하면서, 선물로 케이크와 꽃다발을 받았다.
케이크는 아쉽지 않을 만큼 먹었고, 꽃다발은 어찌 해야할 지 모른채 집에 맡겨두었다. 대략 한 달 간에 바쁜 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나의 꽃다발은 거실 벽에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엄마, 저거 뭐야?
아빠가 저렇게 해놨던데? 저렇게 두면 오래 간대.  

드라이플라워라고 하더라. 인터넷을 조금 찾아보니, 안개꽃은 규산질이 풍부하여 저렇게 자연건조를 하기에 아주 좋고, 장미는 그렇지는 않아서 실리카겔(김 봉지에 들어있는 건조제)과 함께 미리 보관한 뒤에 건조하는게 효과가 더 좋단다.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으나, 꽃들은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과 거의 유사한 색감과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번 추억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구나.


살면서 꽃을 받아본 일이 몇 번이나 될까.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하나 하나 접어봐도 한 손으로 충분히 셀 수 있는 정도일 것 같다. 그래도 꽃 같은 기억들은 그나마 두 손으로 셀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장기기억의 사막 속에서 말라 비틀어졌거나, 눈물을 너무 많이 뿌린 나머지 뿌리까지 썩어버렸다.
그 순간의 향기나 빛깔을 이제는 그 때처럼 기억하기 어렵다.


철학자 강신주는, 우리가 강아지 인형보다 살아있는 강아지를 더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간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 없이 소중한 것이며, 그 영원하지 않음을 사랑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어찌 됐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으나, 영원하지 않은 것에 민감해지기보다는 영원의 가망성에 대한 희망에 둔감해지는 것 같다. 순간의 반짝거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예전처럼 슬프지도 않다. 강아지 인형에 대한 갈망을 포기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강아지가 그럭저럭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추억 정도는 드라이플라워로 남겨둘 수 있다면 좋을텐데.


썩지도 않은 채, 그렇다고 말라 비틀어져 악취를 풍기지도 않은 채,
조금만 더 그 향과 색깔을 감각할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주인 없는 풀밭에 이미 버려진 십 수 송이의 풀들에 대한 미련이 못내 떠오르지만, 아쉽게도 이제는 그들의 품종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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