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껏 피곤해서, 아침부터 나약하게 잠과 싸우다가 결국 어김없이 패배하고 오후 4시까지 침대에 뻗어 있었다.
'그래, 백수일 때나 이런 생활도 한 번 즐겨보는 거지.'
합리화를 해보려 하지만 오늘은 그 힘이 약하다.
'나는 이렇게도 금세 지치고 게으른 사람이었구나.
이래서 정말 내 앞가림은 할 수나 있는걸까.'
밀려오는 회의감과 자괴감. 그 와중에 피어나는 궁금증.
'앞가림'이 대체 뭐지? 뭘 가려? 앞?
내 검색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어원에 대한 정보를 잘 찾을 수 없었다. '앞-가림'의 형태인 건 너무나 명백한데, 두 단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맞나?
어느 책(春夏秋冬으로 풀이한 한자의 창제원리와 어원, 이상화)에 따르면 산스크리트어에서의 'ap'이 'work,effort,labour'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발음이 한자 일 업 (業)의 발음과 일맥상통하리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 해석에 따르면 '앞'은 곧 '일'이고 '가림하다'는 '해내다'의 의미로, '앞가림하다'는 말 그대로 '일을 해내다'의 의미가 된다.
유사한 사례를 본 적이 없어서 납득이 잘 가지는 않는다.
'앞'이 '일'의 의미로 쓰이거나 '가림하다'가 '해내다'로 쓰이는 용태를 본 적이 없다.
그냥 쉽게 생각해서 '앞을 가리다'라면?
실제로 북한어에서는 '자기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가려 나감' 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조선말 대사전, 1992)
어린 아이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저고리를 여매지 못한 채 앞섶을 풀어 헤치고 다니는 모습에서 비롯된 말은 아니었을까?
'어유, 쟤는 지금 자기 앞섶도 못가리고 칠렐레 팔렐레 다니는데 어떻게 커서는 잘 먹구 살기나 하려나.' 하는 걱정?
아휴, 아무튼 잘 모르겠다. '앞가림' 한 단어에 꽂혀서 또 글을 쓰느라 한 시간이 날아갔고, 여전히 할 일은 많이 남았고, 나 자신은 점점 강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내 욕망을 잘 감추고 살지도, 절제하지도 못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아직 막연히 상정한 '어른'의 모습에 가닿기는 한참 멀었다.
어떠한 종류의 앞-가림도 솔직히 지금은 잘 못하겠다.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는 것도.
내 못나고 연약한 모습들을 남들 앞에서 잘 가리고 사는 것도.
내 앞에 가려져 있는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그 소중한 앞길을 가려내는 것도.
그래도 주변에 '앞 뒤 안 가리고' 열심히 사는 놈들은
어떻게든 '앞가림'을 해내고 있던데, 이건 또 조금 모순 아닌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