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던 순간은 새벽증상을 수없이 겪고 난 후였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수술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처음에는 8주의 안정가료기간이 주어졌다.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것 같다고 했고, 빨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나는 괜찮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8주라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재수술은 기존 수술보다 더 복잡해졌고, 흉터 위에 새로운 흉터를 만들었다.
8주 중 2주는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침대와 거실이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동거리였고, 오랜 시간 침대에 누워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30세까지 쉴 틈 없이 살았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실기학원과 아르바이트 여러 개를 병행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동아리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학원, 카페, 레스토랑 등 학비를 보태기 위해 놀 시간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휴학을 다짐했을 땐, 쉬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연극을 좋은 인연과 닿아 경험할 기회가 생겨
한동안 대학로에 빠져 살았다. 1년 반 가량을 꿈같은 나날과 청춘 같은 방황을 해보며 제자리로 돌아와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찾아 나섰다.
나는 대학 전공인 글을 곁에 두고 카페에서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연기, 글, 커피. 모두 내가 쉴 틈 없이 달릴 수 있는 의미 있고 즐거운 일들이었다.
나는 항상 하나의 일만 하고 살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꿈 많은 청춘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언저리 깊숙이 박혀있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불안은 불신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달리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듯이, 무언가에 달리듯 몰두해 있으면 잡생각을 할 틈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불가항력으로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렸고, 깊숙이 박혀 있는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깁스를 한 불편함과 수술부위의 고통으로 쉬는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잠만 잤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티브이를 켜놓고, 못 봤던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보고, 때에 맞게 밥도 챙겨 먹으며 큰 감정의 변동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체 리듬이 깨지고 나니 모두가 조용해진 새벽에 통증은 시작되었다.
한창을 통증에 괴로워하다 보면, 진이 빠지는 시간이 오고 그 시간에 허무함이 몰려왔다. 다들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이 시간에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어둠은 몸의 열려있는 구멍으로 들어와 속을 까맣게 만들었다. 나만 왜 이렇게, 나한테 왜 이런 일이라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부정은 동이 틀 때까지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붉게 충혈된 눈과 따끔거리는 목의 통증만 남아있을 뿐. 그때는 수술 부위의 통증도 잊을 정도로 머리가 아프게 울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8주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거실 식탁에 앉아 커피가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커피가 든 잔을 양손으로 잡고 해가 지는 걸 조용히 집안에서 보고 있을 때였다. 파랗던 하늘이 붉게 물들며 가라앉아 갈 때, 황홀하면서도 외롭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죽게 될 거 더 이상 살아나가지 말고 그냥 가라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했다. 그날은 감정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덤덤하게 좋아하는 커피에는 온기가 있었다.
심적으로 온화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저녁메뉴를 선택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들다니. 계속 무시하면 정말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았다.
허한 속에 덩그러니 떠있는 마음이 너무 위태로웠다. 마음에 아무래도 고소공포증이 생긴 것 같았다.
죽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이유는 많았지만 결국엔 하나의 이유였다. '감당할 수 없어서.',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감당하기 싫어서.'였다.
후회와 원망, 절망이라는 감정에 조종당하듯 끌려다니다 보면 항상 "죽음"이라고 적힌 문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문을 열면 모든 답답함을 정리해 줄 마침표가 있을 것만 같았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나와 그렇지 못한 내가 부딪히며 벌어지는 생채기를 보이지 않는 손이 확 뜯어줄 것만 같았다. 피가 철철 나고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운해진 기분.
벌어진 생채기엔 바람마저 바닷물처럼 따갑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기가 오른 듯 멍-,해지다가 아무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후회를 무기로 만들어 스스로 불가항력 상태를 만드는 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