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다른 병원 가보신 적은 없으세요?"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리면 나의 왼발은 마치 꽃다발의 다발처럼 움켜쥐어진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지하철에 급하게 올라타려다 어깨가 낀 모습, 발바닥이 마우스를 잡고 있는 듯한 모양새.
언제부턴지 몰랐다. 중학생 때 친구가 "너 발가락이 이상해. 왜 솟아있어?"라고 말한 순간부터 내 발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의 왼발 중 둘째 발가락은 위로 솟아있다. 항상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바닥에 닿으면 펴지니, 별문제 없이 28년을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여름만 조심하면 됐다. 친구이자 또래가 전부이던 그때는 타인의 시선이 무서웠기에 플립플랍 말고 무조건 앞이 가려진 슬리퍼를 신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20대 때는 남들의 시선과 놀림에 면역이 되어있던 터라,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봐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20대 후반부터 발의 이상증세가 느껴지자 고민이 들었다.
나는 10년 가까이 8시간을 서있거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발에 통증과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굳은살이라든지, 다리가 붓는다면 유독 왼쪽 다리가 더 붓고 저렸다. 굳은살보다는 굳은살로 인해 주변의 살이 아팠다. 발을 디딜 때 전기 충격기를 밟은 듯 찌르르할 때가 있었다.
이런 불편함은 삶의 집중력을 떨어트렸다. 20대 때의 나는 그랬다. 돌도 씹어먹고 뭐든 활개를 치고 싶은데…
걸리적거리는 요소는 바로 해결하고 싶었다. 나는 감기 걸린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인터넷에 유명하다는 족부 전문 병원을 찾아갔다.
둘째 발가락이 위로 솟아있고, 발 모양은 엄마를 닮은 정도로만 알고 28년을 살아온 내 발의 병명은 단지증. 그리고 무지 외반증.
의료는 아무래도 단방향 소통일 수밖에 없다. 환자가 알고 있는, 혹은 알게 되는 병에 대한 정보나 의료지식은 의료인과 비교할 수가 없다.
무지외반증은 지하철 광고에서 많이 보아서 익숙했지만 ‘단지증'이라는 병명은 나에게 겁을 한 움큼 먹였다.
영어로 된 자료를 보며 투명한 안경 너머로 알 수 없는 눈빛을 보이던 의사와 내 발을 신기하게 보던 간호사, 옆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던 엄마.
골반뼈를 떼어내서 둘째 발가락 뼈 사이에 붙이는 골이식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나는 겁을 한 국자 크게 떠먹었고, 목으로 삼켜내며 쉽지 않은 사건이 시작됨을 직감했다.
어떤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전적으로 의사의 목소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수술임은 맞지만 자신에게는 별 큰 수술이 아니라는 의사의 당당한 모습에 안도했다.
그리고 최근에 본인이 개발한 수술법을 젊은 환자인 나에게 집도해 보겠다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패기가 넘치는 때였기에 잘 받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전문적인 모습에 고민할 필요 없이 수술날짜를 잡았다. 병원을 나서며 벽에 가득 스크랩되어 있는 기사와 이력에 믿음을 가지고 몇 개월 뒤 건강해져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병원을 나왔다.
29년, 무탈하게 지탱해 온몸을 처음 수술대에 올렸다. 새하얗고 냉동고처럼 차가운 수술실은 몸을 경직시켰지만
'나도 이제 플립플랍을 신을 수 있는 건가.' '구두도 신을 수 있겠지.' '운동도 이제 강도 높은 걸로 바꿔야지.'라는 설레는 생각을 하며 코로 들어오는 수면 마취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3개월 뒤, 나는 수술대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의사는 처음에 당당하던 태도와 달리 확률을 운운하며 일부 잘못을 인정하고 무상으로 기존 수술법으로 재수술을 해주겠다고 했다.
나와 가족들은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감정과 정신이 무너져 버렸다. 펑펑 울다가, 화를 냈고, 원망하고,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그중 제일 이성적으로 정신은 잡은 언니가 벌어진 문제부터 수습하기 시작했다. 제발 더 이상 같은 문제가 발생 안 하길...
의사의 말처럼 기존 수술로 진행할 거니까 제대로 고쳐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가족들은 나를 잡아줬다. 그렇게 회복기간까지 3달도 안 걸리는 수술을 나는 3년째 정기검진을 다녔다.
두 시간 걸리는 거리를 오분도 안 되는 소득 없는 답변을 듣기 위해 다녔다. 엑스레이를 찍을 때마다 발을 내려다보며 주문을 걸었고, 진료실 문이 열리면 활짝 웃는 의사를 얼굴을 기대했지만
상황은 매번 반대였다. 그러다 보니 대기석에 앉아만 있어도 눈에 눈물이 고이고 이내 사정없이 떨어졌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여기서 수술받고 멀쩡하냐고 묻고 싶기까지 했다.
지금 상황에서 우는 연기 오디션을 봤다면, "큐!"라는 숨이 닫히기도 전에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거다. 그때, 담당 간호사가 다가왔다.
“혹시… 다른 병원 가보신 적은 없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