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탈수모드 중입니다.”
“의료사고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잘못된 부분은 확실히 있죠.”
“더 나아질 수 없어요. 하지만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겠죠.”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들은 성격마저 그 온도에 맞춰지는 걸까. 닭살이 돋을 정도로 냉정했다.
“아무리 잘하는 의사라고 해도, 환자 본인한테 맞고 안 맞고 가 있고, 그런 걸 여러 군데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에요. 자신의 몸이에요. 책임은 본인 몫이에요.”
“수술은 본인이 원하면 하는 거죠. 하지만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으면 수술을 안 하는 게 맞아요.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없는 상태고, 지금 나빠진 상태를 더 안 나빠지게 해 줄 순 있어요.”
풀어서 설명해 줘도 차갑다. 결과를 듣고 주치의와 얘기하고 나와서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아빠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풍경들이 눈에 들지 않았다.
호기심이 강하고 매사 적극적이었던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 타는 것을 좋아했다. 밖의 풍경을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장소를 기억 속에 저장해 뒀다가 한 번쯤은 가서 걸어보고
가만히 앉아있어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창밖이 뿌예보였다.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렇게 공감 없이 현실만을 무뚝뚝하게 말하는 주치의에게 의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거는 그냥 심통일 뿐이다. 선택권이 없다. 나를 받아줄 곳은 이곳밖에 없다.
이후에도 주치의를 두 번 더 만나서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의사는 지겨울 법도 한데 흔들림 없이 대답해 줬고 여전히 기대하지 말라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나의 발과 멘탈은 더 나빠지고 있었기에
yes와 no라는 답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수술을 하겠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결정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잘해봅시다.” 그 말에 나는 의사 앞에서 펑펑 울었다.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어쩌면 더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매번 바들바들 떨며 의사의 눈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와 오래 눈을 마주쳤다. 응원의 감정이 묻어났다. 나도 그를 생각해 보았다.
5분도 안 되는 진료시간을 위해 몇 달, 몇 년 전부터 진료 예약을 하는 환자들. 지방에서 올라와 전날 호텔에서 묵고 온 환자.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대기석에 앉아있는 환자와 보호자.
불안한 눈빛으로 간호사도 의심하는 환자. 아픔의 종류와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병원 한 곳이다. 매번, 매시간 각자의 아픔과 이유에 공감을 해줬다면 본분을 잘 해낼 수 있었을까.
그의 입장에서는 환자에 대한 공감보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해주는 게 먼저였을 것이다. 그 모든 게 그의 잘해보자는 말 한마디에 이해가 되었다.
반복강박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어떤 장점을 얻지 못하더라도 과거의 경험과 상황을 반복하려는 맹목적인 충동‘인데 이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결핍으로 인해 일어나는 행동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쌓이면 무거워지는 법이다. 나는 불행이란 감정을 빨래처럼 통에 던져두고 있었다. ‘또 잘못되겠지.’,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그냥 모른 척 살자. 피하자.’,
‘이러다간 영원히 절름발이로 살 수도 있어.’, ‘나는 이제 사랑도 일도 모든 게 뒤쳐진 채 살아가겠지.’
눅눅하고 축축한 감정은 쌓여서 냄새가 났고, 주변에서도 오물로 변해가는 냄새를 피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돌릴 수 없이 쌓인 감정들은 분류하기도 어려웠다. 어디서 생긴 불안함이었지, 어디서 생긴 부정적인 감정이었지, 어디서부터 쌓인 화였더라...
한꺼번에 돌려버리니 작아져서 입을 수 없거나, 유연제와 땀냄새가 애매하게 섞인 미슥거린 결과물이 나왔다.
전환이 필요했고, 여유가 필요했다. 상처 입은 몸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모험심을 부리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반복되는 어두움은 여기저기 부딪혀 멍을 만들었다.
변화가 필요하면 변화에 대한 행동이 필요했다. 앞으로는 처음부터 분리를 잘해두거나 그때그때 바로바로 처리하기. 손빨래로 가볍게 해도 되는 감정들은 세면대에서 벅벅 빨아버리기.
탁탁 털어서 햇볕 강한 하늘에 걸어두면 바싹 살균돼서 빳빳해지고 내일의 땀에 젖기 전까지 잘 개어 서랍에 두기.
반복의 연속인 삶에서 ‘선택’은 앞으로의 환경과 운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우선 쾌속 세탁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