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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Dec 13. 2020

팔로워와 팔로잉이 헷갈리는 세대

먹고 보니 참 막막한 50대



1. latte is horse에 대한 고찰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노래 우리들의 숨결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엔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1993년 노래마을 <나이 서른에 우린> 중에서


대학시절 이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그렇게 다짐했던 것 같다. 20대를 지나 서른이 되어도 이 마음과 열정을 잊지 말자. 맞잡은 손을 꼭 쥐고 양 옆으로 흔들며 목청껏 외쳤건만, 나이 서른은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삶을 스쳐버렸다.

고양이처럼 재쌉게

개코 같이.


나리꽃보다 능소화에 더 눈이 가는 50대가 40대인 척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머리 염색, 자기 전 영양크림 듬뿍, 목주름 관리. 아이크림 처벅처벅, 노안을 숨기기 위해 휴대폰 글자 조정. 늘어나는 영양제. 뱃살과 팔뚝살은 패션으로 커버가 가능하니 패스.

텔레비전에 나오는 또래의 연예인들을 보며, 쟤 했네. 주사 맞았으니 저렇게 팽팽하지. 세월 앞에 장사 있어? 그 말들의 진짜 의미는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2. 지금까지 다음 세대를 고민하지 않았다

20대에는 30대를 고민하지 않았고 30대에는 40대를 고민하지 않았다. 20대와 30대는 결혼과 육아의 격변기로 다가올 세대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 셋을 데리고 동료의 결혼식을 가야 하는 상황, 동승하게 된 지인이 우리 집 거실을 보고는 놀라던 얼굴. 발 디딜 공간이 없었다. 콩순이 장난감에 빠져있던 첫째, 박스만 보면 제 집인양 들어가 몸을 뉘이던 둘째, 옆구르기 하며 온 거실을 휘젓고 다니는 셋째. 여기저기 발에 밟히던 레고 조각들. 타임슬립을 한대도 그 시절로는 돌아가기 싫다. 신께 맹세한다.


육아의 고개를 돌리니 40대 후반. 희한하게 꽃들이 좋아지더니 50대가 되었다. 50대가 되고 나니 꽃도 좋고 단풍과 노을도 아련해진다. 자연의 풍광도 세대에 따라 느끼는 밀도가 다른가 보다. 노희경 작가의 사랑하지 않는 것은 유죄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봄에는 사랑하지 않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느라 찬란한 봄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 20,30대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느라 자연보다 사람과의 관계에 더 많이 눈이 간다. 40대 이후에 비로소 꽃과 들과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3.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미안하게도 나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늙는 게 모두 익어가는 것은 아니다. 익은 다는 것은 여물어지는 것, 혹은 여러 번 경험하여 낯설지 않다는 것인데 여물지 못하는 늙음이 더 많다.

모두에게 50대가 처음이다. 앞으로 다가올 60대도 처음이다. 50대가 되면 아주 나이 든 어른, 가슴에 광활한 아량을 품은 인격이 고매한 어른, 이때가 되면 먹고사는 일에 초월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현실은 반전이다.


50대는 퇴로가 없다.

사면초가, 진퇴양난, 고립....

책임져야 할 일 투성이다.

6개월마다 돌아오는 아이들의 등록금, 차 할부금의 무게, 부모님이 아프시다고 하면 쿵 내려앉는 돈과 마음, 졸업하고도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등골 브레이커로 자리한 취준생의 자녀, 적당한 품위 유지(50대는 브랜드 옷을 입지 않으면 초라해 보이는 이상한 증세가 발현된다) 노후준비는 존리 아저씨 말대로 먹고 싶은 커피 한잔이라도 아껴야 하지만, 이미 커피 없이는 집중이 안 되는 중독된 하루 속에 살고 있다.


중독된 하루를 살다 보면 뇌의 감수성은 무뎌지고 시야는 좁아지고 감각은 느려진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거들먹거릴 것은 라떼이즈 홀스밖에 없다.

자랑할 정도로 돈이 많으면 커피든 밥이든 지갑을 열면 되고, 성공한 중년에게는 후배들이 먼저 성공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latte is E-beggar(나 때는 이거지)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여 주고, 유명세가 있는 사람은 알아서 대접해준다.

라떼이즈 홀스로 밉상 받는 사람은 평타의 중년층이다. 돈은 없고 성공하지 못했고 유명하지도 않은 평타의 50대. 익을 시간이 없었던 설익은 50대이다.



4. 취준생도 아프지만 50대는 서럽게 아프다.

다 같이 아플 때는 덜 아프다. 어느 놈은 성공하고 어느 놈은 여전히 허덕대고 있을 때, 나는 인생을 헛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올 때 50대는 서럽게 아프다. 서럽다는 말은 통곡할 정도로 슬프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니 진짜로 서러워진다. 생계 관성의 법칙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중년의 무게는 질기고 무겁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의 무게까지도 매달고 있기에.


별다방에 간 휴일이었다. 남자 7~8명이 한꺼번에 우리 옆자리에 앉았길래 봉여사와 커피를 마시며 내심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남자들의 관심사는 무언지 진심 궁금했다. 누구 결혼식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신부가 어떻게 신혼집이 어떻고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더니 각자가 시킨 음료수가 나오자 조용해졌다. 모두들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약간의 머리숱이 빠진 남자(내 또래로 보였다)가 딱히 휴대폰으로 검색할 게 없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얼렁 눈을 돌렸다. 남자는 자신의 주변인들이 모두 휴대폰에 눈을 박고 있는 게 자신의 탓인 양 조금 무안한 얼굴이었다. 꽤 오랫동안 별다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대화를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젊은 친구들은 여전히 휴대폰으로 손가락이 바빴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 보였다.

50대의 민낯이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층이 50~60대로 44%에 달한다. 연령대는 1960~1970년대생까지. 민주주의와 사회변화에 제일 많이 기여한 세대. 장수하는 노년과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 사이에 끼인 세대. 일명 허리세대.


소위 x세대라 불리었던 우리의 젊은 시절도 이렇게 규명된 적도 있었다. 개인적이고 자신만의 주장이나 세계를 중요시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x세대에 대한 설명, 일명 꼰대의 세대


나도 버르장머리 없는 노랑머리 세대였다고!

새로운 세대는 다음 세대를 가격한다.  지식 네이버 질문에 올라온 글이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 라떼이즈 홀스는 언제 시전해도 되나요?

- 자신보다 어린 나이 앞에서.

다행이다. 라떼이즈 홀스는 현재 나이순대로 시전 중이다. 비단 50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5. 인정, 그리고 인식하기

계좌번호가 없어도 돈을 송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세대. 인스타 팔로워와 팔로잉 중 어느 숫자가 더 많아야 되는지 헛갈리는 세대. 차라리 도토리가 좋았던 싸이월드 세대.


50대의 시작은 쿨하게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꼰대 맞습니다.

라떼이즈 홀스 할 만큼 많은 세월 살았습니다.

특별히 성공하거나 부자는 아니지만 나쁜 짓은 안 하고 살았습니다.

가끔 저도 모르게 꼰대 짓 할 수도 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할 수도 있는데요, 가급적 그렇게 안 하도록 노력할게요. 그래도 한 번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건 좀 이해해 주세요.

대신 밥은 제가 더 살게요.

또 당신에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모른 척하지 않을게요. 우리가 정의감은 있잖아요.

호르몬의 변화로 말이 좀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마 당신도 50대가 돼 보면 이성보다 호르몬의 힘이 더 막강하다는 걸 알 겁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라떼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라떼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 말을 조심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도 50대인 내가 무서워 조심할 뿐입니다. 50대 안에는 가끔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하거든요. 저도 노력합니다만 당신도 가끔 나도 모르는 내가 건방을 떨어도 이해해주기를...

외로운 또 다른 저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당신에게 하는 말은, 50대인 제가 젊은 시절의 나에게 하는 말이란 걸, 약간의 후회 같은 거라고.

그럴 때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면 좋겠습니다. 너무 길어지면 시계를 살짝 보든지. 휴대폰을 꺼나 메시지를 확인한다면 눈치 빠른 50대는 지나친 자신의 말을 끊을 줄 알 겁니다. 저도 그럴게요.

같이 놀아주어 고맙습니다.




밤늦게 서울역으로 향하는 환승역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술 취한 남자가 걸어가는데 옷이 얇았다. 갸우뚱 걸음이 비틀거렸다. 바삐 걷는 사람들 속에서 유독 혼자 느렸다. 세상의 외로움을 다 짊어진 듯한 얼굴, 제대로 집으로 가는 건 맞을까.

누군가의 아버지자 남편이겠지. 그의 축 처진 어깨가 아슬하게 흔들렸다. 그의 걸음이 무사하기를.



머리 희끗한

술 취한 어느 중년의

뒷모습처럼

겨울 코끝이 시리다


-아버지의  어깨(양아치 우먼)


머리 숱이 점점 적어지는 나의 50대 짝지를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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