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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Feb 14. 2021

책멍쉬멍

좋은 책을 만나면 친한 친구를 만난 기분



너무 많은 책, 너무 좋은 책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었다. 일과 육아 틈틈이(잠들기 전) 읽기에는 소설이 제격이었다. 그마저도 한 달에 한 권을 읽기가 어려웠다. 잠은 너무 강력해서 한 장도 넘기지 못하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박완서 소설에 폭 빠져 좋은 문장을 필사하다 노트 위에 머리를 곤두 박고 잠드는 일, 그게 매일이었다.



에코백 한가득 소설을 빌려다가 2주일에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그대로 반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팔힘 기르려고 책을 빌리는 수준. 책을 읽고 싶은 갈망을 쓱쓱 끌어 모은 행위였지만 매번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사치였다. 시간의 사치.



시간의 사치 속, 그럼에도 책을 놓지 못했다. 책을 놓지 못한 이유는 읽기가 아니라 쓰려는 욕망때문. 읽기는 쓰기의 준비운동, 나는 준비운동을 포기하면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되뇌였다. 한 바닥씩 필사 노트가 늘어났다. 당연히 팔힘도 강해졌다.



덕분에 몇 개의 소설과 수필을 썼다.

브런치도 쓴다.



책 읽기도 화살표가 필요하다

쓰기를 꾸준하 하면서 나의 책 읽기 오류를 깨달았다. 무조건 많이 읽는다는 것이 좋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또 무조건 많이 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나에게는 여전히 충분히 책 읽을 만한 시간이 없다.

생계 노동을 해야 하므로.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안나 카레니나, 신춘문예 당선 집, 책은 도끼다.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상상력 사전, 분홍 코끼리 몰아내기. 나의 문화 답사기...


책의 챕터가 잡식성이다. 작가 기준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만 파는 것도 아니고 베셀도 아니고. 한마디로 방향성이 전혀 없다. 깊으려면 깊게 가든지, 양으로 가려면 가리지 않고 양으로 가든지. 책장에 있는 책들이 우왕좌왕이니 나도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럼에도 좋은 글, 울림을 주는 글은 깊은 사유와 성찰을 바탕으로 나온다는 불변의 진리, 사유의 결을 넓히는 인문학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또변하지 않은 팩트. 인문학이 스토리를 입으면 소설이 되고 개인의 경험을 더해지면 에세이가 된다.



올해 인문학 서적으로 책머리를 튼다

인문학으로 먼저 가닥을 잡는다. 그중에서도 20대에 잠시 몰두했던 페미니즘에 관한 이론을 다시금 들추어 본다. 페미니즘은  <아들을 위한 여성인문학> 매거진을 쓰기 시작하면서 집중한 분야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라고 말은 하면서도 이론적 지식이 빈약했던 탓에 내친김에 공부도 몰입해서 해보자고.


연휴 때 페미 책을 빌려왔다. 삼일째 세 권을 읽었다. 맞지 않는 책은 머리가 아팠지만 그냥 눈으로라도 읽었다. 아직 세 권이 더 남았다. 코로나 명절때문에 가능한 일.


연휴에 책멍쉬멍을 한 셈이다.

3월까지는 페미 책을 섭렵하고, 4월부터는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이나 사회분야 쪽을, 그 뒤로는 심리나 인문학의 신간 쪽을 탐독해 보려 한다. 글쓰기 관련한 책들도 포함한다. 완독하자. 찔끔찔끔 책읽는 습관을 다독여야 한다. 눈팅하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작가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오지 못하는 경향,

마음도 눈도 급한 독서 방법을 고쳐야 한다.



책장 파기도 마무리 하자

당장 안 읽고 못 배길 것처럼 허둥지둥 사놓고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20여 권은 족히 되는 듯하다. 안나 카레니나도 연달아 읽어야 하므로(스토리가 주를 이루는 책은 읽다가 끊기면 맛이 안 산다) 단숨에 읽을 날을 기다리며 페이지를 못 넘겼다.



올해 책장 파기를 마무리하는 것도 욕심 내 본다.

사고 싶은 책을 꾹꾹 누르고 있는 것도 책장 파기가 아직 덜 끝났기 때문이다. 다른 욕심은 없어도 책 욕심은 많아서 맨날 착한 늑대에게 구박을 받지만 유일한 사치가 책이라. 책을 사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이상한 병인지라(이것도 약이 없는 병인가)



 어릴 적에 책을 사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의 트라우마에 근거한 이상증세의 발현. 채워지지 않는 욕구트라우마일지도. (누구에게나 그런 건 하나씩 있지 않나. 어릴때 욕구불만을 표출하는 행위)

책값이 옷값보다 저렴하므로 이렇게 위안을...


 올해는 책멍쉬멍 하련다

읽다 보면 내 안의 어떤 욕구가 나를 쓰기의 구덩이로 몰아넣을지 모른다. 쓰기는 읽기의 한가운데서 잔잔한 호수가 일으키는 파문처럼 나를 흔든다. 소리 없이 점점 커지는 원을 그리며. 끊임없이 끊임없이 마음을 흔든다. 쓰고 못 배기도록.



그럴 때까지 나를 읽기 앞에 세우는 것. 할 수 있을지 보다 해야만 한다로 목적지를 정하며 마음먹은 곳으로 책머리를 돌려본다.






#매끄러운 정직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우직함이 신뢰를 준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

-쓰기의 말들 필사 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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